실망만 컸던 국립대간 통합논의의 내막
“아직도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31일 교육인적자원부의 대학 구조조정안이 발표된 이후 대학가에 아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다. 올 초 교직원 임금을 삭감한 도내 모 전문대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계획은 앞으로 5년 간 전국의 대학정원을 9만 5000명 줄이고, 경쟁력이 없는 대학들은 통·폐합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고교 졸업생 보다 대학정원이 더 많은 초과사태 속에서 지방 신설대학을 중심으로 대학사회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왔다. 중·고교 교사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교수들이 생겨났고, 신입생 유치 할당을 채우기 위해 고교 진학담당 교사들에게 ‘교제’를 하는 스테이터스(지위)의 역전 현상도 일어났다.

지방의 사립전문대 경우가 특히 그렇다. 국립인 청주과학대는 사정이 괜찮은 편이지만 도립인 옥천 충북과학대나 주성대 충청대학 등의 신입생 등록률은 60∼70%대에 머물 정도로 학생 기근 및 이로 인한 경영난에 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충북의 경우 올 초부터 국립대학간에 통폐합 논의가 이뤄져 오다가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무산되는 등 아직 대학가가 본격적인 위기감을 체득하고 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충청리뷰는 창사 11주년을 맞아 특집 기획으로 ‘위기에 처한 대학’의 실상과 이들의 생존 몸부림, 이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과 구조적인 교육 위기의 징후를 들여다봤다.

우보(牛步) 끝에 무산된 충북대-충주대-청주과학대 통합 논의

고교 졸업생 숫자가 대학 입학정원에 못 미치는, 대학들로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변화 앞에서 상아탑들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초부터 논의가 촉발되면서 관심을 끌었던 국립대학간 통합이 절박한 현실과는 큰 괴리를 보인 채 학내 구성원간 이해상충으로 지지부진, 답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러다 대학통합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낳고 있다.

올 들어 지역의 대학사회에서 일었던 큰 틀의 통합논의는 충북대-충주대-청주 과학대간 3자 구도 속에서 전개돼 왔다. 첫 단초는 충주대와 청주과학대간에서 만들어 졌다.

두 대학은 지난 2월 통합논의에 나섰지만 사실은 훨씬 이전부터 물밑 움직임이 있었다.

충주대와 청주과학대는 양 대학간 통합문제를 놓고 2003년 9월∼11월까지 자체 연구를 거친 뒤 공청회(2003년 11월과 12월 2차례)를 가진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통합논의에 나서기 시작했다.
또 충북대와 청주과학대간 접촉도 시작됐다. 하지만 올 2월 23일 청주과학대와 충주대는 통합추진을 위한 합의서까지 교환됐으나 충주대가 통합안을 교수회의에 부친 결과(2월 27일) 약간의 표 차이로 부결되면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구성원간 이견 못좁힌 게 주원인

당시 충주대 박홍윤 기획연구처장은 “청주과학대와 먼저 통합한 후 충북대와의 추가 통합에 나서려 했지만 구성원간 의견차이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대학은 4개월 여가 흐른 지난 6월 통합논의를 가까스로 재개하고 나섰다. 두 대학간 논의가 재개된 데에는 6월 4일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교원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도내 16개 대학 총·학장과 만나 대학간 자율적 통합문제에 대해 강도높게 거론한 것이 자극제가 된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았다.

충주대와 청주과학대는 안 부총리가 다녀간 사흘후인 6월 7일 증평에서 통합실무추진협의회 첫 모임을 갖고 양 대학 통합문제에 대한 일정 등에 대한 논의에 나섰지만 결국 또다시 실패한 채 ‘내년 논의’라는 기약없는 겨울잠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7월 27일 청주과학대 측에 ‘통합 논의를 내년 5월 이후로 연기하자’는 뜻을 전달한 충주대는 “학내 구성원들이 통합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업대학인 충주대가 통합을 하더라도 일반대학으로 전환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충북대 역시 “청주과학대와의 통합논의를 당분간 유보키로 했다”고 공식화했다. 충북대 또한 학내 구성원들의 반대 의견에 부닥친 것이다.

이처럼 사립대학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박성을 덜 느끼는 국립대학간 통합 작업이 잇따라 무위로 돌아가자 정부의 강력한 유인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합을 이뤄내는 대학에는 특별지원 등 육성대책을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대학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등 ‘당근과 채찍’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고교졸업정원보다 많은 대학입학정원이 더 많은 기이한 사태가 빚어지기까지 정책실기를 한 책임은 대학 설립 인허가권을 거머쥔 정부에게 있는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 임철의 기자


“교육대와 교원대도 포함시키려 했다”
통합 유도 위한 정부의 ‘당근과 채찍’ 정책 필요
주목되는 최근의 충북대-충남대간 통합논의 전개

충북대는 통합논의 초창기만 해도 “교육대와 교원대도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해당 대학들이 저마다 특수한 상황을 들어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충북대는 그 때 이미 “자율적 통합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정부의 강력한 대학 통합 로드맵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감한 ‘당근과 채찍’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 눈길을 끌었다. 결과적으로 충북대는 정확히 앞날을 꿰뚫어본 셈이 됐다.

하지만 이같은 혜안을 가진 충북대는 정작 학내 구성원들간 의견수렴조차 이뤄내지 못했다. 그 대신 최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충남대와 상호 통합을 위한 논의에 본격 나서 주목받고 있다. 양 대학은 10월 초 양해각서를 교환한다는 계획이어서 벌써부터 궁금증을 낳고있다. 이에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올 예산에 1000억원의 대학구조개혁기금을 반영했다”며 “두 대학의 움직임은 고무적이지만 결과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신중히 반응했다.

어쨌든 당시 대학들은 “통합초기에는 연합의 성격을 유지, 학과 또는 전공의 통폐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학생정원 등을 조정하는 방안이 무리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1개 대학으로 완전 통합하는 수준까지 이르러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견을 밝혔다.
/임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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