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하, 결국 돈은 이런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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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 결국 돈은 이런 것이구나
  • 충청리뷰
  • 승인 2016.07.2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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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통합사상가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권은숙 온갖문제연구실 연구노동자

▲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김영사 펴냄.

돈은 5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순수한 물질에서, 물질을 매개로 하는 상징으로, 오늘날에는 순수한 상징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동전의 표식은 그 쇳조각이 어떤 가치를 지닌 진짜임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동전의 표식은 단순한 기호일 뿐, 표식 자체에 내재한 힘은 없다. 그 힘은 인간의 해석에서 나오는데 기호와 상징은 한 사회가 그 해석을 공유하는 만큼 사회적 힘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돈의 본질은 ‘사회적 합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찰스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가 ‘분리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공동체, 자연, 공간과의 유대관계가 하나하나 무너지면서 우리가 낯선 세계 속에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유대관계의 감소는 부의 감소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 존재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곧 ‘관계 자체’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유대와 감사의 마음이 커질수록 소유의 충동은 줄어들고, 안전은 나눔에서 나오며, 이웃의 행운이 곧 나의 행운이 되는 장소, 활기가 넘기는 공공의 장소가 늘어나면 거대한 개인 공간의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헤아릴 수 없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부족하고 살 수 있는 것들은 넘쳐난다. 섹스는 살 수 있으나 사랑은 살 수 없고, 칼로리는 살 수 있어도 진짜 영양분은 살 수 없고, 상품은 살 수 있으나 예술은 살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돈으로 진정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채우려하기 때문이다. 화폐화된 사회 일수록 사람들은 더 불안하고 바쁘다.

돈은 풍요를 결핍으로 바꾸면서 탐욕을 낳는데, 찰스는 한때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자원을 재산 형태로 바꾸어 버린 돈은 ‘공유자원의 시체’라고 기막히게 표현한다. 신성에는 ‘고유성’과 ‘관계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지금 우리는 대량생산 되는 똑같은 규격의 블록을 배열만 바꾼 획일성 속에서 살아간다며, 획일성은 영혼을 죽이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본다.

삶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베풀어 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찰스는, 우주의 진짜 본질이 풍요와 선물이라면? 부가 사람을 탐욕스럽게 만들고 결핍을 만들어 내는 거라면? 다시 묻는다. 부자들의 불안이 말해 주듯 돈은 아무리 많아도 늘 부족하다. 우리는 풍족한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결핍을 느끼는데, 그것은 지금의 화폐시스템, 지금의 정치, 지금의 인식이 만들어낸 것이다. 가능한 많은 부를 소유하고, 지배하고, 가로채면서 냉담한 우주 속에 고립된 자아, 연결된 존재의 풍요와 단절되었기에 영원히 결핍을 경험하도록 운명지어진 자아라는 환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돈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돈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려면 돈의 본질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돈에 대한 우리의 태도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니라 새로운 돈을 만들어 우리의 변화된 태도를 구현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찰스의 주장이다. 돈으로 전환할 사회, 문화, 자연, 영적 자본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우리가 처한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삶의 토대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지구를, 건강을, 돈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찰스에 의하면 오늘날 돈은 ‘내 이익은 상대방의 손해’ 라는 분리 이야기의 일부이며 이것이 바로 ‘이자’의 본질이기도 한데 이자는 경쟁, 불안, 부의 양극화를 낳는다. 그래서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관대하게 베푸는 것으로 부를 재정의 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찰스는 돈이나 공유자원을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방향으로 사용해야만 하고, 그냥 갖고만 있어서는 잃게 된다는 원칙, 돈의 보유에 대한 과세를 부과하고, 축적의 부당함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소비능력 이상을 보유하는 일은 자연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므로, 돈이 선물과 필요를 연결해 주는 역할, 인간의 창의성을 조율해 공동의 목표를 이루게 하는 마법 같은 부적의 역할(돈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시간의 풍요를 경험하는 진정한 여가를 희구하며, 시간의 부족은 과소비 이유 중 하나로 시간의 손실을 보상받으려고 지나치게 소비하고 있다고 본다. ‘시간은 곧 삶이다.’ 자발적 간소함을 선택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연간 얼마 이상을 벌지 않겠다’고 자신의 소득 제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소유하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더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축적을 통한 안전보장이 환상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과도한 재산은 삶을 짓누르는 짐이라는 깨달음, 돈을 나만 계속 지닐 수 없고 필요하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순환시키며, 축적은 왜소한 분리된 자아를 학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새로운 경제제도의 영적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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