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오늘, 아∼ 언론(言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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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오늘, 아∼ 언론(言論)
  • 충청리뷰
  • 승인 2016.07.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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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대한민국에서 이념논쟁은 참으로 끈질깁니다. 아니 징그럽다고 말해야 더 실체적일 것같습니다. 오죽하면 “이념은 대한민국의 아편이다”고까지 말들을 하겠습니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던 마르크스를 원용한 발언일 것입니다.

이정현 녹취록 파문이 예의 이념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에 대한 반응들입니다. 지금 시중의 사석에선 권력의 부당한 언론개입이라고 말하면 빨갱이로, 청와대 홍보수석의 정당한 업무라고 강변하면 수구꼴통으로 단박에 분류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방송보도를 놓고 불거진 언론담론이 졸지에 보혁간 이념대결로 급변침하는 현실이 그저 난감할 뿐입니다. 민족간 서로 총질을 해대며 반백년의 분단에 신음하는 것도 억울한 판에 요즘은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모든 게 적대적 이념문제로 치환돼 국민들을 알아서(?) 다투게 합니다. 참으로 구역질나는 국가 문화입니다.

언론에 대한 보도통제냐 아니면 청와대 홍보수석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이냐를 규정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당시 이정현으로부터 문제의 전화를 받은 김시곤 보도국장의 느낌, 즉 감정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만 확인되면 어느쪽이 맞는지는 쉽게 판단이 섭니다. 만약 김시곤이 모종의 심적부담을 가졌다면 제 아무리 둘간의 관계가 호형호제하는 사이었더라도 이는 똑떨어지는 언론개입입니다. 더군다나 상대는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역학관계에선 이것 빼달라 저것 넣어달라는 이정현의 요구가 아닌 “지금 그 뉴스 잘보고 있네”라는 점잖은 덕담만으로도 언론쪽에서 감지되는 썰렁함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실제로 과거 권위, 독재시절의 이런 어법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을 보면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김시곤이 당초엔 자사 보도와 관련된 통화사실을 단순 비망록으로만 기록하다가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외부의 간섭이 심해지자 ‘이건 아니다 싶어’ 녹음까지 결행케 됐다는 후문이고 보면 답은 더 확실해졌습니다. 당연히 보도책임자로서 심적 압박을 느낀 것이고, 이는 언론의 가장 기본정신인 보도의 자율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명백한 외압인 것입니다.

더 상식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는 이정현의 말은 사실 일리가 있습니다. 당연히 홍보수석이라면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불리한 보도는 직을 걸고서라도 막아야 그 위치와 역할에 대한 믿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충신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정현의 녹취 내용을 보면 언론을 권력의 파트너 정도로 여기면서 보도통제를 하려했던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언론과 권력의 사이는 분명 파트너십이 맞지만 그렇다고 마냥 동반자적인 관계는 될 수가 없습니다. 교과서적인 얘기이지만 언론의 견제와 비판, 그리고 이로 인한 둘간의 긴장관계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합니다.

▲ 이정현 의원
▲ 5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열린 청와대 공영방송 장악 대국민 사과 및 이정현 의원 사퇴촉구 기자회견에서 김주언 전 KBS 이사가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이정현은 바로 이 점을 간과했고 때문에 녹취록 속 그의 투박한 어투엔 언론이 권력에 대해 가장 금기시해야 할 제1의 표적 ‘서로 좋은 게 좋다’는 이른바 권·언유착의 긍정적 저널리즘을 강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묻어나고 있고, 바로 이것 때문에도 이정현의 전화는 보도통제를 향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정작 국민들이 분개하는 것은 다른데에 있습니다. 청와대 실세가 방송보도에 관여했다는 문제가 아니라 당시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우리나라 최고 국정운영이 국민의 안녕·생명과는 전혀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모처럼의 수학여행에 잔뜩 들떠 떠났던 생때같은 어린 자식 300여명의 생사를 놓고 가족은 물론 온 나라가 피를 토하며 몸부림치는 순간에도 이 나라 국정의 컨트롤타워는 오로지 대통령 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미 드러난 사실, 현장구조가 초를 다투는 그 절박한 상황에서조차 윗분에게 보고할 자료부터 챙기라고 닦달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국민들을 ‘심쿵’의 상태로 만들었다면 이번에 폭로된 이정현 녹취록은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를 가장 확실하게 확인시켜주는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정현 녹취록에 세월호 승객의 생사를 우려하는 단 한줄의 메시지만 있었더라도 그는 절대로 보도통제라는 오명은 안 들었을 것입니다.

세월호 논란 뿐만이 아닙니다. 지역에서도 언론에 대해 유독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요즈음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언론의 방종으로 변질되고 있고, 그러기에 결코 언론을 넘봐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역으로 언론을 너무 쉽게 여기며 오히려 횡행하기까지 합니다.

언론이 권력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인 이해관계에 얽히면 더 이상 언론이 아닙니다. 하나의 이익집단에 불과합니다. 유럽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으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대포’라는 별명을 가진 독일 ‘슈피겔’의 경영방침은 이렇습니다. “언론사 문을 닫을지언정 독립언론이 지니는 참 언론의 가치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슈피겔이 언론과 이익집단을 구분하는 기준은 자사의 유구한 역사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긍정적 저널리즘의 여부입니다. 결국 언론의 반골기질과 저항·투쟁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2016년 오늘, 언론이 부끄럽습니다. 어느땐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하여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왜 행동하지 못하는가! 왜 분노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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