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서점에서 고려서점까지…방민석의 책방인생 33년
헤매는 도서정가제-학생 감소-도서관 증가 ‘위협요인’

토박이 열전(9)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그때는 가격이 구매의 기준이 아니었다. 점방의 주인이 이웃이고, 얼굴이 곧 신용이던 시절의 얘기다. 과자 한 봉지를 사더라도 구멍가게 아저씨와 의리를 지켜야했다. 혹여 동네 밖 연쇄점에서 물건을 샀다면 구멍가게를 지날 때 봉지를 숨겨야했다. 그때는 동네빵집에서 빵을 샀고, 못은 동네철물점에서, 책은 동네책방에서 구매했다. 문학소년, 문학소녀들에게는 책방이 아지트였다. 신문을 통해 책에 대한 정보를 얻고, 없는 책을 주문한 뒤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사라진 것이 어디 동네서점뿐이겠는가. 동네라는 두 글자가 붙은 수많은 업종들이 세월의 뒤란으로 사라져갔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밀리고 인터넷쇼핑몰과도 싸워야했다. 이제 최대의 적은 스마트폰이다. 그 작은 휴대용 기기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정글 같은 생태계에 아직도 살아있는 동네서점들이 있다. 지역경제가 약육강식의 밀림이라면 동네서점은 작은 초식동물인데 말이다. 학교 앞 문방구서점까지 합치면 청주시내에만도 50여개가 영업 중이라는데, 참고서 외에 일반도서까지 취급하는 서점도 17개(청주시 서점조합 가입 기준)나 된다. 최근 이들 서점들과 지역 출판업계, NGO, 지역작가, 작은도서관협의회 등이 만나 상생충북(相生忠BOOK)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역서점에서만큼은 지역출판물과 베스트셀러를 동일 조건에서 진열, 판매하자는 명분 있는 운동이다. 명분이 있으니 지지자도 나타날 것이고, 후원집단도 생길 것이라 믿고 시작한 일이다.

조짐이 좋다. 상생충북을 시작한 대전제는 동네서점들이 베스트셀러와 지역출판이 맞장을 뜰 수 있도록 판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청주시내 17개 동네서점에는 2016년 6월21일 일제히 상생충북 진열코너가 마련됐다. 사실 버텨준 것만 해도 신기하고 고마운 일인데 말이다. 청주시내에서 제일 오래 버틴 책방을 수소문했다. 2012년 문을 닫은 일선문고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곧 반백년의 역사를 자랑할 터였다. 상당공원 인근 유신상사는 교과서, 참고서 총판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버틴 것이 용하다’는 말이 나올만한 동네서점 중에서는 고려서점이 오래됐다. 출발은 신흥서점이었다. 방민석 대표는 스물일곱 살에 서점 주인이 돼 올해 예순 살이 됐다.

“고향은 진천이에요. 서울에서 건설회사 다니다가 청주로 내려왔는데 아는 형님이 서점을 두 개 하다가 하나를 내놓는다고 해서 덜컥 시작한 게 1983년 12월13일이니까 벌써 33년이네요. 신흥고 앞에 있어서 신흥서점이었는데 쓸모도 없는 지하도를 만들면서 맥이 끊긴 겁니다. 학교 앞이 도태가 되니까 아파트 있는 쪽으로 조금 더 들어와서 2007년 3월16일에 고려서점을 개업한 거죠. 이게 가건물이라 공용면적도 없이 실 평수만 60평이니까 규모는 꽤 되는 겁니다.”

신흥고와 청주여고가 있는 블록에만 무려 일고여덟 개의 서점이 있었단다. 방민석 대표는 1991년부터 청주시서점조합의 총무를 맡았고, 1997년부터 5년 동안은 조합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청주시내 서점들의 흥망사를 줄줄 꿰고 있다. 그리고 동네서점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정확한 분석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다. 짐작하고 있는 대로 촘촘하지 않은 ‘도서정가제’는 도입 취지와 달리 대형서점들의 배만 부르게 만들었다. 발간한지 1년6개월이 지난 도서는 가격을 자율책정하도록 하니 출판사에서 책을 사오는 것보다 인터넷서점이 더 쌀 때가 있단다. 방 대표도 때로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사올 정도라니 말문이 막힐 정도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지금은 문방구서점 다 합쳐도 50개 안팎이잖아요. 그때는 178개, 180개가 넘었어요. 그런데 이게 누굴 탓할 일이 아니에요. 일단 학교마다 학생들이 줄었으니까. 한 반에 70명이던 것이 35명으로 줄어드니까 2000명이던 학생이 1000명이 됐죠. 거기에다 시험 안 보지, 책 안 읽지…. 이게 전부가 아닌 게 동네마다 도서관이 생겼잖아요. 그러고 보니 책을 안 읽는 것도 아니에요. 거기 가보면 사람들이 꽉 차있으니까. 이렇게 원인이 복합적이에요.”

이쯤 되면 방민석 대표의 생존전략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잠 안자고 일했죠. 책을 누가 더 빨리 구해다 놓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참고서를 지정해서 발표하거든. 그러면 그 다음날 그 책이 서점에 있어야하는 겁니다. 오토바이,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일단 멀리 있는 서점에서 빌려다 놓고, 나중에 주문해서 갚고, 그렇게 했던 거죠. 서점 주인들이 승용차 끌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넘어서입니다. 나도 1994년 차 사고 나서는 서울 만남의 광장까지 책 받으러 다니고…. 거기까지만 가져다 놓으라고 했어요. 내가 찾으러 간다고. 그렇게 했으니까 지금까지 버틴 거죠.”

1년 365일 중 363일 문을 연다면 믿겠는가. 추석과 설날만 빼고는 매일 문을 연다고 했다. 오전 7시30분이면 서점 문을 열고 밤 10시30분에 문을 닫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새벽 6시30분에 문을 연단다. 평생 함께 일해 온 아내와 직원,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여섯 사람이 이 서점에 매달리고 있단다. 방민석 대표는 전산을 열어 서점의 매출과 이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인건비 800만원에 월세까지 매달 고정 지출이 1100만원, 1200만원이 넘어요. 하루 200만원 매출은 올려야 간신히 유지가 됩니다. 도서마진이 25% 정도인데 고객한테 5% 적립해주고, 카드 수수료 3% 나가고 하면 남는 게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동네서점이라도 하루에 200명은 들어오는 것 같아요. 문제는 요, 참고서 매출이 70%가 넘는다는 거예요. 다들 그렇습니다. 일반도서 매출이 40%만 돼도 괜찮을 거 같아요. 친구들이 ‘아직도 책방하냐?’ ‘먹고는 사니?’ 이렇게들 물어보니까요. 미치지 않고서야 서점 시작하는 사람은 없겠죠. 책이요? 책방주인이라고 책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경제도서 쪽으로 좀 보는 편이죠. 직원들은 책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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