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대학에서의 교수와 학생간 주종 관계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사실관계를 구분하지 않고 굳이 ‘주종(主從)이라고 표현한 것은 단 1%의 이같은 일탈도 결국엔 상아탑의 전체 문화를 심각하게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대학원과 비교하면 일반 학부의 경우는 새발의 피라고 한다. 지인중엔 오랜 고민 끝에 큰 맘 먹고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교수와 학생간의 지나친 갑을(甲乙)관계에 적응하지 못해 중도에 포기한 사람도 있다. 그는 “아니꼽고 더러워서 못하겠다”고 했다.

포털에서 화제를 일으켰던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이 얼마전 책으로 나왔다. 본인도 대학원생인 작가는 “대학원생들의 문제를 지금처럼 외면하기만 하면 앞으로 이 나라에서 노벨상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다”고 일갈했다. 무한한 창의와 상상력으로 학문의 마지막 정점을 찍어야 할 대학원생들이 학위라는 족쇄로 인해 지도교수의 노예로 전락해 가는 과정이 그의 눈엔 ‘슬픈 초상’으로 비쳐진 것이다.

그가 특히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것은 교수의 폭언과 인격모독이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이른바 대학원의 문화를 견인하는 힘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오로지 지도교수의 취향과 입맛에 맞춰 현실적 안위와 무탈을 꾀하려는 현실 적응력이고, 이 과정에서 교수는 전지전능의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절대자로 변신(?)한다.

상황이 이러니 종종 사회문제가 되는 지도교수에 의한 성희롱과 연구가로채기는 언제든지 터져나올 수 있는 상수(常數)가 되고 있다. “대학원이 한명의 인간으로서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학문의 원활한 발전 또한 가능해진다”는 작가의 말이 참으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지난달 19일 있은 서울 남부지검 검사의 자살은 상사의 폭언때문이라는 논란이 거센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30대 초반의 그는 유서에 “물건을 팔지 못하는 영업사원들의 심정이 이렇겠지, 병원에 가고 싶어도 병원갈 시간이 없다”는 내용을 남겨 검사라는 직무에 대한 업무스트레스를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안타까움을 샀던 당사자다. 뒤늦게 그 유족이 상사의 폭언여부를 규명해달라는 탄원서를 내는 바람에 우리나라 조직문화의 갑을관계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뒤이은 의정부지검 여검사의 SNS폭로가 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16년째 검사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그는 “별의별 간부를 다 만났다”며 그동안 자신이 경험한 상사와의 불편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거론해 파장을 일으켰다. 스폰서와 질펀하게 놀던 간부가 자신을 꽃뱀이라고 욕했다는 부분에선 말문이 막힌다. 진위여부를 떠나 당사자들로선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검사라는 직업은 힘들고 고되다. 피의자의 인격과 방어권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죄를 밝혀내야 하는 검사로선 사람들을 대하는 자체가 처음부터 곤욕이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막말을 했다간 곧바로 어깃장이 돌아온다. 때문에 수사하는 과정에서 늘 현실과 이상의 간극으로 고통스런 사유(思惟)를 많이 해야하는 것도 검사의 숙명이다. 아파도 병원갈 시간이 없다던 한 젊은 검사의 자살이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같다.

언론계에서도 상사의 막말은 비일비재하다. 기자 초년병이나 혹은 낙종한 기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선배로부터의 언어적인 징벌은 냉혹하기까지 하다. 지금이야 워낙 하급자의 인격이 존중되는 세상이 됐지만 그래도 유구한 역사를 지닌 언론계의 상하간 관성은 여전하다. 간혹 쓸만한 신입기자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갑자기 직을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역시 상급자에 대한 정서적 기피가 원흉일 때가 많다. 물론 그 배경엔 상급자의 폭언과 인격적 모독이 깔려 있다.

어느 조직이든 상급자로부터의 지도와 깨우침은 대개 두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직책을 내세운 강압적인 가르침이고 또 하나는 대화와 상호이해를 존중하는 동반자적 가르침이다. 역시 문제는 전자의 경우로 이럴 때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문제의 상급자는 필히 아랫사람에 대한 폭언과 막말을 자신의 위상과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확보하려는 계기로 여긴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랫사람들에 대해 습관적인 폭언을 일삼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업무능력을 그것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윗사람의 폭언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갑질이다. 그리고 이런 폭언에 대한 아랫사람의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부부관계에서 흔히 듣는 얘기 “늙어서 보자”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젊은 시절 힘으로 윽박지르며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남편의 막말 한 마디가 부인에겐 평생 삶을 관통하는 마음의 상처로 남아 응징의 내성을 키우는 것이다. 지금 이 말의 냉혹함을 곱씹으며 배우자 눈치에 전전긍긍하는 이른바 ‘힘든 노후’의 수컷들이 주변에 많다.

우리나라 조직문화에서의 윗사람 폭언과 갑질은 냉정하게 따지면 개인 문제가 아니다. 나라 전체에 만연하고 있는 권력과 특권의식의 한 파생 현상일 뿐이고 그들도 이에 맞춰 생존을 위한 길을 좇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꼭 어디랄 것도 없이 대한민국 모든 곳이 하나같이 갑을관계로 엮어 신음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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