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하지만 유의미한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영화로 말하는 세상
윤정용 영화평론가

▲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Proof of Innocence, 2016년 제작 감독 권종관 출연 김명민, 김상호, 성동일, 김향기

최근 몇 년 동안 재벌의 ‘갑질’ 또는 ‘패악’에 대해서는 신물나게 들어왔다. 하청업체 대표가 대금을 요청하자 감금하고 폭행한 사건, 아들이 술집 종업원에게 폭행당하자 아버지가 직접 폭행당한 아들에 대해 복수한 사건, 승무원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기내에서 무릎을 꿇게 하고 심지어 비행기를 회항시킨 사건 등 재벌의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재벌들의 일탈과 그들의 뒤를 봐주고 비호하는 권력과 언론의 유착에 대해서는 최근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예컨대 영화 <베테랑>(2015), <내부자들>(2015), TV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2016), <리멤버 ― 아들의 전쟁>(2015-2016)에서 나타난 재벌의 일탈 행위와 그들의 죄를 묵인하고 때로는 비호하는 권력과 언론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도 놀랍지도 않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행태에 대해 분노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얼마 전 재벌의 ‘갑질’과 ‘패악’을 다룬 영화가 또 개봉했다.

다름 아닌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2016)다. 영화 줄거리는 좋게 말하면 ‘간명하고’ 조금 심하게 말하면 ‘빤하다’. 한 때 모범경찰이었던 필재(김명민 분)는 동료의 시기와 배신으로 경찰을 그만두고, ‘잘 나가는’ 사건브로커가 된다. 그는 잘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끊이지 않는 사건 수임으로 ‘신이 내린 사건 브로커’라고 불린다. 어느 날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인 필재와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모시는(?) 판수(성동일 분)에게 편지 한통이 도착한다. 편지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인천의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 사건’의 범인 순태(김상호 분)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필재는 본능적으로 이 사건이 조작되었고 더 큰 배후가 있음을 직감한다.

다음 이야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에는 망설였던 필재가 결국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려 결국 악을 소탕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익히 보아왔던 그런 이야기다. 이 영화는 형식 상 전형적인 ‘버디 무비’다. 한 때는 모범적이고 강직했으나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으로부터 배신당하자 속물적인 사건 브로커가 되어버린 형사와 또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향의 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본의 아니게 악을 소탕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흔한 영화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소재나 형식에서 크게 특별하거나 뛰어나지 않다. 또한 누군가는 이 영화가 재벌의 일탈과 비행을 폭로하는 유행의 ‘끝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유의미하다. 첫째, 불의를 보았을 때, 바꿔 말하면 누군가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냥 “세상이 그런 거지”하면서 체념하거나 묵인하거나 방조하면, 막상 자신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아무도 자신의 억울함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상식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는, 그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돕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가 겪은 부당함에 최소한 분노하고 그가 겪은 고통에 공감해야 한다.

재벌의 ‘갑질’과 ‘패악’을 다룬 영화

드라마 대사인지 영화 대사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계란이 바위를 깨뜨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재벌의 갑질과 그들을 비호하는 권력과 언론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욕하고 손가락질이라고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법적으로 합당한 죗값을 치르지는 않을 지라도 말이다.

둘째, 이 영화는 영화의 선택 기준, 좋은 영화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어떤 영화는 영화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 때문에 볼 수도 있고(<시민 케인>), 어떤 영화는 입소문 때문에 볼 수도 있고(<왕의 남자>), 어떤 영화는 감독의 ‘작가주의 정신’ 때문에 볼 수도 있다(홍상수의 영화들). 또한 단지 배우가 좋아서, 배우가 마음에 들어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보통 마지막의 경우, 즉 배우 때문에 영화를 본다고 하면 왠지 영화에 대한 안목이 낮은 것처럼 간주된다. 그것도 배우의 연기보다도 단지 배우에 대한 호감에 전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소위 영화 전문가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영화 평가도 대체로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 감독의 작가주의 정신, 영화 기법, 배우의 연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들은 위 항목에 따라 별점을 주거나 점수를 매긴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에는 크게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별점을 주거나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관객들이 영화를 고르는데 참고할 수 있는 여러 ‘레퍼런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때로는 별점을 주거나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올바른 영화 선택을 방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에 너무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

어떤 영화는 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나서 혹은 입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그 영화 속 배우를 눈여겨 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만일 영화 <변호인>(2013)의 주인공이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그 영화가 그 만큼 흥행이 되고, 영화 속에서 다루어졌던 ‘부림사건’과 영화 속에서 언급되었던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지금만큼 사회적으로 환기되었을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이처럼 때로는 좋은 배우가 좋은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잊혀진, 또는 잊혀져가는 사건을 사회적으로도 환기시킨다.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도 그렇다. 아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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