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지방 사람들은 무슨 일이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하는 게 생활신조다. 언제나 게으른듯 하지만 할 때면 제대로 하는 게 그들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중 미얀마의 앙뜨왓뜨사원,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들사원, 멕시코 잉카건축 등이 열대 지방에 남아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빨리 한답시고 너무 대충대충 해서 탈이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우리의 빨리빨리나 대충대충의 문화가 빚어낸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충대충 문화의 폐단은 비단 건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IMF 위기때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 구조조정이었다. 금융을 비롯해서 재벌, 노동시장, 공공부문 등의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고 법석을 떨었다. 때문에 실업자가 거리를 메우고 노숙자마저 수천명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무엇하나 깔끔하게 매듭지어진 게 없다. 모두가 대충대충 하다만 게 현실이다. 이미 IMF는 먼 옛이야기처럼 아련할 뿐이다.
최근 청주의 경제적 현안은 조흥은행 본점을 유치하는 일이다. 충북은행과 강원은행을 합병한 조흥은행이 98년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공적자금을 2조 7천억원 지원 받는 대신 경영정상화와 관련된 몇 가지 약속을 했다. 그 중에는 2001년 말까지 본점을 충청권으로 이전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국영업망을 가진 조흥은행이 충청권으로 옮긴다는데 대해 청주와 대전은 각기 아전인수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각 도시는 나름대로 물밑접촉을 하면서 헛물도 많이 켰다. 그러나 그 동안 떡줄놈격인 조흥은행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다가 약속한 시한이 되자 슬그머니 그 결정권을 주총에 떠 넘겼다. 그래서 올 3월 주총에서는 그 매듭이 지어질 판이었지만 또 미루어졌다. 이유는 지난 6일 금융감독원장이 “조흥은행 본점 지방이전문제는 청주 대전지역이 합의해서 연말까지 결정토록 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주총이 아니라 양 지역의 합의에 넘겨졌고 시한도 연말 대통령선거후로 미루어졌다.
조흥은행으로선 본점의 지방이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터에 시간을 벌어서 좋고 그러다가 아예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만 있으면 더더욱 좋은 것이다. 현정부 역시 인심 잃는 악역을 맡지 않아서 좋은 것이다.
그 통에 청주와 대전은 같은 충청권이면서도 본격적인 이전투구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태권도 성전유치에서 보듯 너무 격렬하게 싸우기 때문에 어느 한쪽 손만 들어줄 수 없어 아예 원점으로 돌린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충청지역은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것이다. 더욱이 서로 싸우다 입은 깊은 상처는 누구로부터 보상받고 치유 받을 것인가? 모두가 무책임한 행정에 농락당하는 꼴이다.
조흥은행 본점 이전문제는 현실적 여건으로 볼 때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비록 한 지역이 양보를 한다해도 금방 옮길 처지가 못된다. 설사 옮겨간다 해도 총무, 전산 등 극히 일부만 형식적으로 옮길 것이 뻔한 사안을 놓고 4년여년 동안 헛물만 켠 충청지역 사람들만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지금부터 유치경쟁을 벌이다 상처 입을 양 지역 주민들도 안쓰럽다.
경제는 현실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 더이상 빨리빨리와 대충대충으로 얼버무리는 일은 삼가자. 정부나 은행도 다급하다해서 아무렇게나 약속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 우리지역도 은행 본점을 옮기는데 따르는 어려움이나 돌출변수는 생각지도 않은 체 오직 옮겼을 때의 이점만 따져 미리부터 흥분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이제부터는 매사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하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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