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김수민의 비례대표 당선을 놓고 지역여론은 사실 반반이었다. 20대 국회 최연소와 부녀국회의원 탄생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면서도 한편으로 아직 약관의 나이에 갑자기 의원배지를 단 것에 대한 일종의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사회의 정상적인 성장가도를 경험하며 자기만의 내공을 구축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 직업군 중에서도 속물근성의 정점이라는 정치판에 뛰어 든 것이 과연 앞으로 ‘자연인 김수민의 삶’에 어떤 득실을 가져올 지를 내심 가늠해 본 것이다. 그러면서 사석의 결론은 그녀가 명실상부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의 도움과 조언이 필연적이라는 예단이었다.

같은 지역민으로서의 동정이 아니라 김수민은 앞으로 그가 하기에 따라선 정치인이라는 상품성을 얼마든지 배가시킬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췄다. 탄탄한 명문가 출신에다 수려한 외모, 그리고 허니버터칩으로 이미 검증이 된 전문인으로서의 기량이 이를 보장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일반 사회인에서 정치인으로의 초기 연착륙일텐데 이번 국민의당 홍보 리베이트 사건은 정치초년생에게 감당키 어려운 시련을 안김으로써 매일 뉴스를 지켜보는 지역민의 입장에선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언론에 비쳐지는 김수민의 모습이 처음보다는 많이 여유있어 보인다는 점, 그러기에 이것 역시 아직 풋풋한 젊은이가 대찬 정치인으로 다져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번 김수민 파문을 접하면서 정작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안철수에게 쏠려 있다. 지난 총선을 통해 ‘새로운 정치’를 기치로 호남의 안주인이 되면서 차기 대권의 공고한 입지를 닦은 그에겐 최대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이 졸지에 제 3당으로 부상하며 그에게 떨어진 당장의 과제는 인물 위주로 급조된 신생정당의 딜레마 이른바 ‘노련한 정치꾼들의 영역다툼’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리더십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한데 엉뚱하게도 가장 나이어린 정치 비기너 ‘김수민’이라는 변수가 향후 당의 명운을 가리게 될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안철수에겐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도 없다. 지난 2012년 그가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이후 끊임없이, 그리고 줄기차게 가해진 정치 시험이 또 안철수에게 떨어진 꼴이다. 당연히 이번 일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안철수라는 잠룡은 승천은커녕 다시 수면아래로 가라앉을 지도 모른다. 그가 새정치를 표방한 이상 관행이라는 명목의 리베이트 수수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국민들의 상실감은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

안철수의 정치력에 대해선 여전히 토가 달리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젠 예전과는 사뭇 다른 평가를 받는 게 지난 총선 이후의 달라진 모습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환호케 하면서 적어도 ‘국민들의 정치혐오증이 낳은 신기루’라는 지난날의 폄훼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대선때마다 후보의 자질보다는 정치적 우상(偶像)을 좇는 국민감성에 편승한 나머지 번번이 ‘실패하는 대통령’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안철수에게 좀 더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리더십을 바라고 있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가 하는 말에 실체가 없다 하여 정적들로부터 마치 아귀찜에 아귀는 없고 콩나물만 있다는 뜻의 ‘아구찜 화법’으로까지 불렸던 안철수의 말정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 그가 만든 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해 국회의 3각 축을 이룬 이상 이제 국민들이 바라는 건 정치현안에 대한 확실한 행동과 실천력이다.

그런데 김수민의원의 검찰소환을 앞두고 “수사결과에 만에 하나 문제가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당헌당규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한 안철수에 대해 박지원 원내대표는 “리베이트 의혹은 안철수(대표)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아 연막을 쳤다. 점차 불거지는 안철수 책임론에 대한 일종의 선긋기일 수있지만 국민들이 듣기엔 그다지 편치가 못했다. 오히려 당 대표로서의 역할을 너무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만 더 샀다.

정치는 추구이자 행동이지 결코 사유(思惟)의 즐김, 유희가 아니다. 지금까지 안철수는 링 밖에서 새정치니 혁신이니 하며 국민적 정치혐오에 편승한 화법(話法)의 정치를 구사했다면 지난 총선 이후로는 링 안으로 들어와 상대와 맞서 싸우는 투쟁(鬪爭)의 정치를 주문받고 있다.

낡고 지난 것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지만 그것을 실제적인 낙관으로 돌리기까지는 행동을 내세운 설득력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자질보다는 이미지로 선택된 국가 리더가 결국엔 그 한계를 드러내며 자멸하는 이치와 똑같다.

김수민 사태는 바로 이것을 향한 안철수를 시험하고 있고 그 결과가 여의치 않으면 국민들은 또 등을 돌리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막 사회를 알아 갈 올해 만 29세인 김수민을 양육강식의 황량한 들판에 홀로 내동댕이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가장 증오한다는 정치판에 김수민을 끌어들인 건 결국 안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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