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김남균 취재1팀 기자

▲ 김남균 취재1팀 기자

‘갑질’은 꼭 ‘갑’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을’이 꼭 피해자만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을’도 갑질을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을’ 뒤에 더 약자인 ‘병’이 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다보면 무수히 많은 ‘갑’도 만나지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인 ‘을’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용역업체에서 파견 나온 정문 경비사원을 폭행한 노조 간부 이야기다. 줄거리는 이랬다.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의 계열사의 도내 모 사업장 노조간부가 경비 사원을 폭행했다. 폭행사유는 자신을 몰라보고 차량 출입을 막고 신분증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노조 간부의 행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해자인 경비사원이 문제를 제기하려 하자 회사를 동원해 압박을 가했다. 피해자 경비원을 파견한 용역업체는 ‘갑’인 원청회사의 압력에 굴복했다. 아니 태생적으로 순응했을 것이다. 결국 피해자인 경비사원은 문제제기도 못한 채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노동자는 분명 회사와 자본에 비해 사회적 약자가 맞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보듯 ‘갑’의 힘에 기댄 ‘을’은 더 약자인 ‘병’에게 더 없는 강자다. 약자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이 때로는 강자의 폭력성보다 못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열아홉살 청년이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작업도중 열차에 치여 숨졌다. ‘2인 1조’ 안전수칙에 따라 그의 옆에 있어야 할 동료는 없었고 홀로 작업하다 사고를 당했다. 그의 가방에는 아직 물도 붇지 않은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이 컵라면 때문에 사람들은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스크린도어 청년의 죽음에는 ‘메피아’라는 기득권 집단의 ‘갑’질이 있었다. 이 집단의 정체를 파고 든 언론보도에 따르면 메피아는 MB정권 시절에 기초를 닦으며 세력을 키웠다.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전직 검사의 행위가 전관예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검찰이 결론을 내렸다. 1년에 100억원을 벌었는데 전관예우가 없었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청주 출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생계형 비리’ 발언이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한 장관은 지난 해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당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방위사업청 출범 10년간 방산비리가 줄었다고 평가하느냐’는 질의에 답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 장관은 “(방사청 개청) 전후 자료를 별도로 갖고 있진 않지만 개청 이전엔 대형 비리가 많이 있었다면 개청 이후엔 생계형 비리가 많다고 본다”고 답했다.

유 전 원내 대표가 ‘생계형 비리’의 뜻을 묻자 한 장관은 거듭 “규모 면에서 상대적으로 생계형”이라고 설명했다.

보통사람들의 자녀들이 30년 전의 침낭을 쓰고 30년 전의 총기를 가지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데 수천억원 하는 방신비리가 연일 알려지면서 ‘한민구 생계형’이라는 검색어가 인기를 끈 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도 무수히 많은 갑질을 접한다. 이중 진짜 갑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을’의 ‘헛갑질’도 있다. 노조 간부의 일탈 행위는 ‘헛갑질’이다. 갑도 아닌 것이 갑처럼 행동해서 ‘헛갑질’이기도 하고 정신이 헛나가서 ‘헛갑질’이다. 또 마음을 허하게 해서 ‘헛갑질’이다.

‘갑질’이든 ‘헛갑질’이든 둘 다 나쁘다. 그러나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헛갑질로 진짜 갑질을 덮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진짜 ‘갑’들의 이야기에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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