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선지현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 운동본부 집행위원

▲ 선지현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 운동본부 집행위원

지난 6월 15일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 꽃상여를 든 노동자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섰다. 빗줄기가 제법 세게 내리쳤는데 노동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들은 충북 영동에 있는 유성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동료를 잃고 100여일이 다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투쟁을 벌이고 있다.

유성기업 노조파괴의 배후에 현대차 자본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검찰이 공개한 자료를 통해 충분히 밝혀졌다. 회사가 주도해 만든 어용노조가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이었다는 사실도 법원을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의 동료를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다.

“법원에서는 불법을 한 것은 회사였고, 노동자들은 피해자라고 판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이 아파야 합니까, 왜 우리가 죽어야 합니까. 우리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라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절규는 5년 전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던 유성사태가 현재도 진행형이라는 걸 말해준다.

2011년 현대차에 피스톤링과 라이너를 납품하던 유성기업은 ‘심야노동 철폐’를 노동조합과 합의했다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노조파괴를 자행했다. 노동자들은 3개월동안 공장 밖으로 내쫓겨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해야했다. 어렵게 법원 조정으로 현장에 복귀했지만 현장탄압은 계속됐고, 급기야 노동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과 인연을 끊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 십장씩 날아드는 경고장과 고소고발, 분 단위로 이어지는 관리자들의 감시와 통제,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면 날아드는 징계 통보 등 유성기업노동자들은 공장 정문을 들어가는 게 지옥 같다고 고백한다.

도대체 왜? 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 배경에는 기업주들의 ‘노조혐오’가 있다. 기업주들에게 노조는 ‘제 밥그릇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된 집단’이고, ‘경제를 망치는 주범’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법으로 노조 할 권리가 보장됐든 말든 싫고 밉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제일먼저 ‘해고’의 칼날을 세운다. 특히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자마자 계약해지를 당해 회사에서 내쫓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기업주들의 지독한 노조혐오는 헌법의 가치도 파괴한다. 현대차는 본사 앞 노동자집회를 막기 위해 용역을 사서 집회 알 박기를 한다. 유성기업 사업주는 사무직까지 동원해 유령노조를 만들었다가 얼마 전 ‘설립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노조를 결성해 권리를 지키라는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헌법의 가치를 지켜야 할 정부는 기업주들의 반헌법적 행위를 제대로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노조혐오를 부추긴다. 해고를 막기 위한 파업도 불법이며, 소수노조는 아예 교섭에도 참여할 수 없고, 기업주들의 유령집회를 보호하는 데 공권력을 남용한다.

이런 비상식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주의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주와 정부가 조장하고 있는 '노조 혐오‘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절망과 고통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청주산업단지 안에서 ‘노조 할 권리’ 캠페인을 하던 중 만난 한 중년의 노동자는 “휴일에 일해도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이 공단 안에 부지기수다. 노동부에 고발이라도 할라치면 실명을 말해야 하고, 증명을 해야 하는 데 그러면 바로 해고다. 노조가 있는 곳은 낫다. 노조가 없는 곳은 불법이 판쳐도 눈감고, 귀 막고 일해야 한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당신들이 바꿔줄 수 있어?”라고 묻는다.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게 노조를 지켜야 합니다.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고,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노동자들이 사는 길입니다. 함께 바꿉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