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이병관 충북·청주경실련 정책국장

▲ 이병관 충북·청주경실련 정책국장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이제 인사말처럼 사용될 정도로 사람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오히려 경제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으면 뭔가 잘못되었고 정부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작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DP)는 2만 8천 달러로 현재 환율로 단순 계산해도 약 3,270만원이다. 4인 가족이라면 한 가구의 소득은 1억 3천만원쯤 된다. 물론 국민총생산의 상당부분은 기업과 정부 등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실제 개인소득으로 가는 비율은 줄어든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우리나라는 돈 자체가 부족하여 경제가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단지 돈이 한쪽에 몰려 있고 잘 돌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추억 속에 떠올리는 전형적인 서민경제는 드라마 ‘응답하다 1988’에서 그려졌던 모습일 것이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이고, 아버지 혼자 직장 생활을 해서 온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 그러한 서민들의 삶을 지금 경제적으로 실행하려면 웬만큼 고소득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당시 상황은 ‘3저(低) 호황’이란 말로 대표되는데, 저금리·저유가·저환율(저달러)의 시대였다. 한 해 동안 주가가 70% 넘게 뛰고, 낮은 금리와 정부의 주택경기 부양책으로 아파트 불패 신화가 만들어지던 때이다. 소위 가정에선 ‘맏아들 하나 잘 키워 온 집안 먹여 살린다’는 것이 가능했고, 국가 차원에선 ‘대기업 몇 개 잘 키워 대한민국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가 지금 경제는 어렵다고 푸념하고, 옛날엔 좋았는데… 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시대에 대한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모습이 정상은 아니었고, 지금 우리가 겪는 경제적 고통은 바로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 질병(!)의 원인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으로 대표되는 고도경제성장기였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부동산 투기에 따른 불로소득이 다수의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을 박탈감과 생계위협 속에 몰아넣고 있었다. 다만 당시엔 무주택 서민들의 고통도 컸지만, 경제성장률도 높아 서민들도 나름대로 혜택을 보았고, 부동산 투기에 성공한 졸부들도 많이 탄생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IMF를 정점으로 경제성장의 거품이 꺼지고, 이후 대기업이 골목상권으로 진출하면서부터이다.

청주에선 1987년 대현지하상가, 1989년 청주백화점, 1991년 흥업백화점이 등장하며 유통업계에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기존 상권과 큰 충돌은 없었고, 오히려 고객을 끌어들여 활기를 주는 등 나름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90년 대 중반 이후 청주시 서부 지역과 용암동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지면서 아파트 단지를 배후로 하는 신흥 상권들이 조성된다. 문제는 이런 상권을 대기업이 장악했다는 점이다.

1997년 이마트, 1998년 농협하나로클럽의 등장은 전통시장, 골목상권에 지각 변동을 주었다. 이후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진출로 서민경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골목상권 붕괴는 가속화되었다. 현재는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SSM(기업형슈퍼마켓), 프랜차이즈, 편의점 등 다양한 형태로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장악하였다.

기업의 고용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이제는 고용 없는 성장으로 가고 있다. 자연히 사람들은 자영업 창업으로 내몰고, 골목시장은 포화상태가 된다. 여기에 대기업까지 골목으로 진출하니 서민들이 제대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기업의 고용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규제해야 하는데, 이러한 근본적인 대책은 등한시한 채 정부는 ‘생계형 창업’을 장려하고 있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 대책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짓을 그만둬야 하고, 국민들도 ‘특효약’이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들이 한 방에 병을 치료해주길 바라면 바랄수록 정부는 엉뚱한 정책을 내놓으며, 경제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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