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앞에 임시폐업 안내문이 내걸린 지 딱 1년이 됐다. 지난해 6월 5일, 병원 위탁운영자가 임시폐업을 선언하고 문을 닫아 걸었다. 극심한 노사분규와 청주시의 위탁운영자 배임 혐의 수사의뢰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청주시의 새 위탁운영자 1차 공모는 개인병원 단독 신청으로 부적격 판정됐다. 이어 2차 공모에서 종합병원급인 청주병원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1차 공모에서 실패(?)한 시는 2차도 무산될 경우 ‘지역제한’을 폐지하고 신청 자격을 전국으로 확대키로 했다. 전국 확대시 ‘고용 승계’ 의무 조항을 빼겠다는 방침도 내세웠다. 장기간 투쟁을 벌여온 노조를 겨냥해 2차 공모 우선협상자와 합의를 압박하는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다행히 2차 공모 선정사인 청주병원와 노조는 고용승계 + 정년보장에 우선 합의했다. 1차 공모 당시 지역 종합병원들이 포기한 이유가 ‘강성노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청주병원의 정년보장 합의는 진일보된 성과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양측의 협상은 최종 결렬됐고 청주병원은 수탁을 포기했다. 뜻밖의 걸림돌은 노조 상급단체 인정여부였다. 청주병원은 노인병원 재직 조합원들의 노조활동만 인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의료연대와 노조를 분리시키려는 의도였다. 이에대해 노조는 ‘사실상 노조 불인정이나 다름없다’며 반발했고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거의 8부 능선까지 오른 장기 노사분규 대타협 희망이 물거품이 되버렸다.

이후 청주노인전문병원 노조원들이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시와 시의회의 전국 공모 전환과 고용승계 의무조항 삭제를 막기 위해 집회수위를 더 높였다. 하지만 3차 공모에서 대전 대명의료재단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고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새해 벽두 한겨울에 노조원들은 단식농성을 시작했고 지역 진보단체·노동계 인사 100명이 동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본보 취재진이 대명의료재단이 운영하는 보은 소재 모병원의 불법의혹을 보도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각종 탈불법 의혹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오자 수탁 포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역 수사기관의 내사설이 나돌자 ‘자기방어’ 차원의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4차 공모를 실시했고 2차에서 포기했던 청주병원이 재선정됐다. 일단 청주병원은 2차 공모시 고용승계를 약속했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급단체를 통한 노조활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1개월 전과 똑같은 상황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그동안 선명성 경쟁과 진영논리 등으로 노사분규 사업장의 대타협이 막판에 무산된 경우가 있었다. 선명성을 앞세우면 제시하는 목표가 높아진다. 진영논리에 휩싸이면 나름의 성과를 얻어도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지도부는 현실보다 명분을 쫓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 노조는 병원폐업 1년만에 4차 우선협상 대상자를 상대로 마주하고 있다. 어떤 수준의 협상목표를 정할지, 노동계와 진보단체는 그 목표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하다. ‘협상은 상대가 있고 전부를 얻을 순 없다’는 충고는 진부하다. 하지만 청주노인전문병원 폐업 1주년을 맞아 ‘이번이 마지막 기회’란 불길한(?) 예감은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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