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비협조로 재고의약품이 쌓여 못살겠다. 약국당 평균 2억원씩 묶어두고 있으니 얼마나 낭비냐.” “무슨 소리냐. 그것은 의사들의 고유권한이다. 임의조제나 하지마라.”
의약분업을 실시한지 이제 1년 6개월. 의사와 약사들이 다시 붙었다. 분업 초기 극명하게 서로의 입장차를 드러내 국민들로부터 ‘밥그릇 챙기기 싸움’ 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두 집단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다시 분노하고 있다. 약사들은 유효기간이 지난 3000만원 어치의 의약품을 불태웠고, 의사들은 의약분업을 실패한 제도라며 새로운 형태의 분업을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의사와 약사들을 만나보아도 이들의 관계는 멀기만 하다. “의약분업 되고 나서 좋아진 것은 약사들 밖에 없다”는 의사들의 말에 약사들은 “웃기지 마라, 개인의원들의 수입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아느냐”고 응수한다. 정부가 분업의 명분으로 삼은 의약품 오남용 방지에 대해서도 이들은 서로 약품을 많이 쓰는 쪽이라고 손가락질한다.
또 약사들은 의사들이 분업을 반대하는 이유가 처방전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공격하고, 의사들은 약사들에게 약품 한 개 집어주고 조제료를 어머어마하게 챙기는 집단이라고 비난한다.
물론 의약분업 전에도 이런 갈등은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이렇게 표면화, 노골화 되지는 않았다.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과 일부 언론들이 합세해 의사와 약사들이 서로 이득을 챙기기 위해 싸우는 것으로 전달, 두 집단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졌지만 엄밀히 말해 이들을 이렇게 만들고 조장한 것은 정부였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서는 “의사편을 들으면 약사들에게, 약사편을 들으면 의사들에게 욕먹는다”는 이상한 논리가 형성돼 아예 안쓰고 마는 분위기도 있는게 사실이다.
분업 전에 의사들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해온 것이 조제권 남용, 즉 감기들면 아는 약국에 가서 증상을 이야기하고 약을 조제해오는 식으로 자리잡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었다. 이 때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간단한 구호가 ‘불조심’ 표어 만큼이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꼭 의사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분명이 고치고 넘어갔어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아 보자고 시작한 의약분업이 지금은 어떤가. 의사, 약사, 국민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제도가 돼버리고 말았다.
‘일단 해보고 문제가 나오면 고치자’는 밀어부치기식의 한국형 제도는 또 비양심적인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냈는지 모른다. 남편이 의사이고 부인이 약사인 집안은 왜 처방전을 남에게 주느냐며 한지붕 살림을 차려 돈을 무수하게 벌어들이고, 명의로 이름난 친척벌 아저씨 처방전을 아래층에서 고스란히 받은 약사 조카 역시 수입을 올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어떤 제도가 생겨나면 이득 보는 쪽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의약분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세상을 ‘약게 사는’ 사람들이 무수히 탄생되고, 오늘도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사와 약사간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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