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조철희 네파청주성안직영점 대표

▲ 조철희 네파청주성안직영점 대표

여성산악인 故지현옥선배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1999년 봄날 목련꽃이 흐드러졌다 속절없이 떨어지던 그즈음 그렇게 기약 없이 산이 되어버린 그 선배. 1988년 봄 내가 대학산악부 막내로 산악부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일 년 뒤 북미알래스카의 최고봉 맥킨리봉(6194m)을 등반하려고 준비가 한창이던 시절. 처음 보는 여성이 산악부실 문을 노크도 없이 열고 들어오더니 대뜸 “일학년이니?” 라고 묻는다, 여성이지만 기에 눌렸는지 “네~” 한마디 대답 후 서로 말이 없다. 마치 늘 다녀갔던 사무실에 들어온 것처럼 이것저것 장비며 계획서등을 둘러보다가 부식이 있는 캐비닛을 열고는 라면 한 봉지를 꺼내서 주먹으로 톡톡치며 의자에 앉는다. “너도 내년에 맥킨리 가니?” 라고 묻는 순간 알았다. ‘아~ 이 사람이 말로만 듣던 지현옥 선배구나..’며칠 전 한국 여성맥킨리원정대에서 정상을 등정하고 귀국했다던... 그렇게 둘이앉아 생 라면을 먹으며 들려준 이야기가 맥킨리 원정등반 이야기였다.

영하40도 혹한의 등반을 마치고 돌아온 산악인이라기 보단 그냥 털털한 학과 선배의 느낌(?). 그 뒤로도 몇 차례 맥킨리등반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현옥선배와의 자리는 산악부실과 조령산등지에서 있었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표현에서 현옥선배만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 故지현옥씨

다정다감함과 냉정함이 함께였던 현옥선배의 이미지는 그 뒤로도 계속 남아있었다. 서로 학교가 다르기에 자주 볼 기회는 없었지만, 일 년 뒤 나도 맥킨리봉(6,194m)을 등정하고 1990년에 있을 칸첸중가원정대의 훈련대원으로 참가했을 때 함께 운동했던 것이 그 선배와 함께한 산행의 전부이다.

1991년 서원대학교에서 무즈타카타봉(7546m)을 등정하고 1993년 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원정대에서 원정대장으로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등정할 때까지의 소식을 군 생활도중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1996년 지현옥 선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97년 가셔브럼 원정등반출발을 앞두고였다. 6년 만이다. 전보다 좀 더 다부진 몸에 변함없이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산을 선택한 후 직장생활을 포기한 지방의 산악인이 등반활동을 유지하기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르바이트에서부터 노점상판매에 이르기까지 산을 다니기 위해 일을 했고, 일한 모든 대가를 고스란히 산에 쏟아 부어도 자신이 꿈꾸는 등반을 하기에는 역부족 이였던 현옥선배, 또 다른 등반을 준비하기위해 지독하리만큼 자기 자신과 싸우는 모습의 흔적들이 다른 이의 눈에 비쳐지기 시작했다.

1999년 3월에 안나푸르나로 출발하기 전 현옥선배가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꺼내어 내게 건넨다. “이거 먹을래?”, 흰 비닐봉지 속에 바삭하게 말려진 구수한 누룽지가 있었다. 그토록 수수하고 털털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렇게 38세라는 나이로 안나푸르나의 품에 영원히 안기게 되기까지 현옥선배에게는 한국최초는 물론 세계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함께했다.

대한민국이 아닌 세계적 여성산악인이었던 지현옥 선배, 17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시금 회고해 본다. 서원대 출신인 지현옥은 1999년 4월 29일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뒤 하산도중 실종됐다. 매년 그를 위한 추모제가 모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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