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조선일보 방우영의 죽음에 대한 평가는 예상대로 크게 엇갈리고 있다. 보혁신문간 논조도 극명하게 궤를 달리했다. 어쨌든 방우영은 그가 견지한 이념의 옳고 그름, 그리고 개인별 호불호를 떠나 대한민국 언론사의 한 시대를 견인했던 인물임엔 틀림없다.

‘밤의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은 메이저 언론을 앞세운 그의 영향력이 과연 어떠했는지를 이미지만으로 시사하고도 남는다. 원래 이 말은 방우영보다 먼저 조선일보의 최고 책임자를 맡아 당시 박정희대통령과 호형호제하며 밤 시간의 뒷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친형 방일영을 의미했다. 하지만 방우영 역시 역대 정권을 거치며 형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똑같은 내공을 보임으로써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오른 것이다.

24세에 공무국 견습생으로 입사해 64년의 언론인생을 마감한 방우영은 그 오래된 시간에 걸맞게 언론과 관련된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리고 이것들은 당초 그가 원했던 방향으로 각인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대부분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되면서 후세 언론인들한테는 언론의 일탈과 오욕에 대한 많은 화두를 던져 왔다. 우선 그가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는 신문경영의 두가지 원칙을 꼽을 수 있다.

1964년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제호만 빼고 다 바꾸라”는 슬로건으로 신문사 경영에 일대 변화를 꾀한 그는 두가지 철학을 제시한다. ‘재정적으로 독립해야 언론자유를 지킬 수 있다’와 ‘신문제작은 기자들에게 맡긴다’였다. 그런데 이 두가지 원칙은 지금까지도 모든 언론사들이 간절히 원하지만 결코 쉽게 이루지 못하는 마치 시지푸스의 숙명과도 같은 과제다. 이것만 보면 그는 분명 언론에 관한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언론사의 재정독립은 바르고 정직한 언론구현을 위한 가장 1차적인 필수요건이다. 실제로 방우영은 경쟁지를 제치고 단기간에 발행부수 등 모든 지표에서 최고 정점을 찍는 업적을 이뤄냈다. 문제는 그 과정에 있다. 그가 내세우는 결정적 성과는 치열하게 권력에 아부한 권언유착의 전리품이라는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청와대 만찬장에서 벌어진 이른바 신문사 오너들의 ‘홀딱쇼’다.

1989년 10월 26일 저녁 청와대,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방우영 조선일보사장 김병관 동아일보사장 이건희 중앙일보사주 장강재 한국일보 사장 등이 만찬을 벌이던 중 느닷없이 방우영이 무릎을 꿇면서 “각하 제 술 한번 받으시죠”하며 동동주를 두손으로 받쳐든 장면은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감히 누구도 범접못할 한 획(!)을 그었다.

그 당혹스러움에 노태우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고 동석했던 다른이들은 방우영에게 면박을 주다가 멱살잡이까지 했다. 그 때 시중에선 박정희가 살해된 10.26의 꼭 10년만에 이번엔 언론이 모든 걸 벗어던지고 권력 앞에서 알몸으로 ‘죽여주옵소서!’를 자초했다고 수근거렸다. 그의 재정독립 신념은 이렇듯 언론의 자존심을 뿌리째 짓밟았다.

신문제작은 기자에게 맡긴다는 소신의 표현인지 몰라도 그는 생전 후배 기자들을 챙기는 데 각별했다고 한다. 이번 조문에서도 이를 추억하는 인사들이 유독 많았다. 역시 문제는 그 잣대가 너무 편의적이었다는 것이다. 1974년 12월 18일, 그는 독재권력의 언론침해에 문제를 제기한 기자 두명을 전격 해임한다. 이유는 위계질서를 무시한 하극상이라는 것이었다. 권력의 눈치를 보다가 이에 방해가 되는 기자를 되레 자른 것이다.

신문제작은 기자에게 맡긴다며 편집권 독립을 말하던 그의 헷갈리는 역발상은 3개월 후에 더 과감한 액션으로 표출된다. 해임된 동료의 복직을 요구하며 역시 권력의 부당한 언론침해에 맞서 자유언론 선언운동에 나선 기자 33명을 일거에 해임하는 초유의 결기를 단행한 것이다. 방우영은 후에 이 사건을 놓고 “두고 두고 마음의 멍에로 남아 있다”고 회고했지만 언론의 독립성에 대한 그의 원칙은 이미 씻을 수 없는 오욕만을 남겼다. 만약 그 때 방우영이 33명을 해고하는 대신 조직의 책임자로서 권력에 항거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의 직(職)부터 내던졌다면 아마 지금은 대한민국 언론의 대부쯤으로 추앙될 것이다.

그가 내세운 언론경영의 두가지 원칙은 백번이라도 옳다. 그렇다면 이를 지키지 못할망정 그 가치를 스스로 유린하지는 말았어야 한다. 차라리 후세 언론인들한테 그 책임을 넘겨 자중이라도 시켰다면 언론인으로선 결코 명예롭지 못한 ‘밤의 대통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사꾼 언론관’이다. 면종복배, 더 나아가 살아있는 권력에는 굽신거리면서도 죽은 권력과 약자들에겐 발길질을 해대는 비열한 언론 말이다. 지난 4.13총선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현 정권에 비수를 들이댄 것은 다름아닌 그때까지 박근혜 용비어천가를 애타게 부르던 수구언론이었다.

권언유착으로 언론이 길을 잃으면 국민이 알아야 할 진실은 묻힌다. 정보는 왜곡되고 인권은 처참하게 유린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서민에게로 돌아간다. 적어도 방우영은 이에 대한 고해성사 정도는 자처하고 떠났어야 영면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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