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부끄러움이 치미는 책 <십 대 밑바닥 노동>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권은숙 온갖문제연구실 연구노동자

▲ 십 대 밑바닥 노동 이수정·윤지영 지음. 교육공동체 벗 펴냄.

‘다짜고짜 반말에 막말과 고성, 쉬는 시간 없고, 다쳐도 산재는 하늘의 별따기, 한정된 일자리, 느닷없는 해고, 일상이 된 모욕’ 대한민국 청소년 알바의 현실을 대표하는 열쇳말이다. 청소년 노동은 ‘반찬값 정도’로 폄하되는 여성노동과 함께 왜곡되어 왔다. 공부할 나이에 돈이나 밝히는 애라는 식의 눈총도, 어린데 기특하다는 식의 칭찬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청소년이 일하는 이유를 한가지로만 설명 할 수 없다. 돈도 벌면서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수도 있고, 경험을 쌓기 위해서 일 수도, 부모의 눈치를 덜 보며 살고 싶은 독립의 욕구 때문일 수도 있으며, 생계를 위한 일일 수도 있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청소년의 삶과 노동, 욕망은 아주 복합적이다. 책 <십 대 밑바닥 노동>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기획하고 6명의 노무사, 변호사, 활동가가 8명의 청소년을 심층 인터뷰 한 내용이다.

호텔에서 알바하는 혜정이.

키, 몸무게, 사진을 등록해야 호텔알바 정보업체에 가입이 가능했다. 복장검사를 심하게 하는데, 검정구두에 검은색 머리 망으로 단정하게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정리’된다. 오후 2시에 호텔로 가서 교육받고 6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연회장 양쪽 문 옆에 설치 된 병풍 뒤에서 숨어 앉아 있다가 손님이 오면 나와서 의자 빼주고 물 따르고 다시 병풍 뒤로 와서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병풍 뒤는 어둡고 좁고 바닥은 딱딱하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다용도실에 처박아 놓은 물건들 같다. “야 쟁반 쓰지마. 손님들은 쟁반에 요리 담아서 내 놓는 것 싫어하니까 손으로 접시 받치고서 나눠 줘. 그릇 깨지거나 손님 옷에 음식물 흘리면 다 너희가 물어줘야 돼” 장갑 없이 맨손으로 수프그릇을 받치려니 뜨겁다. 그것도 양손에 2~3개를 동시에 받쳐서 내어놓으려니 불안하다. 하지만 참아야지. 돈 벌러 와서 돈을 물어 주고 갈 수는 없다.

키다리 피에로 민관이.

시급이 1만원으로 다른 알바보다 좀 세다. 그런데 평일엔 행사가 없다. 서울에서 부천이나 인천 같은 행사장까지 이동하는데 2시간이 걸리고, 도착해서 분장하고 옷 갈아입는 데 1시간이 꼬박 걸린다. 그 시간은 알바비가 없다. 키다리 피에로 의상, 스틸트(키다리 발판), 분장도구 장비 들고 지하철로 1시간 이상 움직여도 비와서 행사가 취소되면 일당은 없다. 의상은 회사에서 구입하지만 본인이 직접 빨고 관리한다. 분장할 때 쓰는 아이라이너나 스펀지 퍼프, 화장품 담는 가방 같은 건 전부 내 돈 주고 사야한다. 오늘 행사장에서 요술풍선 100개를 입으로 불었다. 키다리 피에로를 아이들이 좋아한다. 악수만 해도 좋아서 난리다. 내 실력이 올라가고 경력이 쌓이면 나도 일당 10만원을 받게 될 거다.

배달대행 노동자 원식이.

사무실로 배달 콜이 오면 그 가게로 가서 배달음식을 내 돈으로 낸다. 사무실에는 오토바이 사용료 5000원, 보험료 1000원 합쳐 6000원을 매일 낸다. 배달 수수료는 건당 2,000원이다. 2만원짜리 피자라면 1만8000원에 사서 배달하고 2만원을 손님에게 받는 식이다. 결정적으로 ‘반품’이라는 것이 있다. 저녁 시간 때처럼 바쁠 때는 음식점을 여러 곳 들러야 한다. 어떤 때는 대여섯 건을 동시에 배달하기도 한다.

음식을 늦게 갖다 주면 식었거나 불었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음식은 내가 처리해야 한다. 반품 당할까봐 조마조마하고 두려워 차가 막히든 빨간 신호등이든 건너편 차선이든 오토바이가 갈 수 있는 길만 보이면 그냥 내달린다. 반품당하면 2000원 벌려다가 1만 8000원 날린 꼴이 된다. 위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 음식점 주인, (배달대행)사무실 사장한테 욕먹어야 하고, 무엇보다 먹고 살 수가 없다. 신호 지켜가며 일 했다가 하루 종일 겨우 6000원 번 날도 있었다.

최저임금은 받았다고, 일하다 다치지 않았다고, 성희롱을 당하지 않았다고 청소년 노동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고 가볍지도 않다. 더 적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며 일해야 하는 노동의 시대, 그야말로 ‘근로 빈곤’의 시대가 청소년 노동을 덮치고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 책에는 위에 소개한 사례 외에도 여성청소년 노동자 서정이의 위장취업이야기, 택배노동자 가람이의 하루, 기초생활 수급가정 경수의 단단한 노동, 탈가정 청소년 효진의 홀로서는 이야기가 있다.

인권운동 현장에서 나를 추동한 감정은 ‘분노’였다. 변방에서 연구노동자로 있는 요즘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환경파괴, 빈부격차, 불안한 일자리, 나쁜 나라까지. 그/그녀들에게 “우리 여기까지 해냈어, 다음 세상을 부탁해” 당당하게 말 할 수 없어서다. 혹시 나와 같은 심정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그리고 알바 중인 그/그녀를 만나면 따뜻한 미소를 보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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