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구신화 첫번째 이야기

 따뜻한 인터넷 세상을 꿈꾸는 충북인터넷신문 <CBi 뉴스>는 다양한 독자를 위한 <인터넷 소설>을 연재합니다. 첫 연재로 <리징 이상훈>의 “벌구신화”를 시작합니다.

저자 이상훈씨는 지난 79년 MBC-TV 천만원고료 단막극 수사드라마로 데뷔하여 <웃으면 복이와요> <수사반장> <또래와 뚜리> 등의 방송 작가 활동을 해왔으며 내사랑 짱구, 얼간이 대학생, 올챙이 작전, 돼지클럽, 코끼리함대 등의 단편집과 성인코믹소설로 못생긴남자, 요라기 등의 작품을 발표해온 중견 작가입니다.


 청주고와 고려대를 거쳐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과(석사)를 공부하기도 한 이 작가는 몇 년전부터 고향인 청주에 내려와 주로 사이버를 통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이번 충북인터넷신문 <CBi 충북인뉴스>를 통해 선 보이는 <벌구신화>는 기원전 수세기 전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에서 벌어졌음 직한 일을 희화적으로 구성한 코믹 가상 역사소설. 백두산 천지에서부터 척추 모양으로 길게 내려온 백두대간을 따라 형성됐던 우리민족의 삶을 옛 지명들만으로도 코믹한 풍자 풍으로 유추해냅니다.


 특히 남쪽 해안지방에서 시작된 벌구신화 이야기가 어느 날 갑자기 충북 제천지방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우리 지명에 얽힌 역사적 진실들이 재미있게 전개됩니다. 코믹하게 엮어진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이런 역사들에 깜짝 놀라게 되고 ‘아 그렇구나!’하고 감탄사를 터트리게 될 때쯤 이 벌구신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작가 이상훈씨(50)는 “<벌구신화>는 이제까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아주 특이한 소재와 약간은 희화적인 전개로 인해 무리가 따를 수 있을지 모른다”면서 독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글을 써보겠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CBi 충북인뉴스 편집부


머리말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리려는 이야기 무대는 기원전 수세기 우리 한반도 남쪽 지방.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아예 나라 꼴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당시,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에서 벌어졌음직한 일을 희화적으로 본인이 꾸며본 것입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나라 지방 곳곳에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 유물들이 차례대로 출토되고 있음은 과연 무엇을 뜻합니까? 그리고 저 멀리 남해안 지방에서 추운 북쪽 지방의 유물들이 함께 발견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한반도에 척추 모양으로 길게 내려온 백두대간은 옛날 사람들에겐 요즘으로 말하자면 남쪽과 북쪽을 사시사철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통로이자 요즘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고속도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이 백두대간을 통하여 과거 오래 전부터 추운 북쪽 지방과 따뜻한 남쪽 지방의 교류가 분명히 있어왔고, 이것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옛 지명(地名)들만으로도 그 사실을 유추해 낼 수가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 제가 이 글을 통하여 그런 사실들을 시원스럽게 확인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여러분들은, 남쪽 해안지방에서 시작된 벌구신화 이야기가 어느날 갑자기 충북 제천 지방으로 옮겨가게 되어 어쩌면 깜짝 놀라실는지도 모릅니다.

 그대 여러분들께서 '아! 그렇구나!'하는 감탄사를 터뜨리게 될 때 쯤에 이 벌구신화는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겠지요.

 이제까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아주 특이한 소재를 가지고 다루는 것이니만큼, 그리고 약간의 희화적인 요소를 가미해 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무리가 따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부족한 점들은 독자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양해로서 충분히 메워지게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2004. 9. 14. 리징 이상훈 올림.

 

1. 찾아온 청년

파아란 하늘 위를 점점이 수놓듯 하얀 갈매기떼가 끼륵끼륵 울며 날으고,
푸른색 바닷물이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내지르며 일시에 밀려들어왔다가 시커먼 바윗돌에 부딪혀 하얀 거품을 흩뿌린 채 물러나곤하는 어느 남쪽 바닷가 조그만 마을-
언제부터인가 이 마을은 '벌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기가막히게 싸움 잘하는 사람들만이 모여 살고있는 희한한 마을로 알려져있다.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취미가 싸움이요 특기가 싸움이며 그들의 오래된 생활 습관중 한가지가 여유시간에 싸움연습을 하는 것!
그러니 오죽하면 힘자랑, 주먹자랑, 칼솜씨 자랑을 하는 외지인들이 이곳에 멋모르고 들어와 으스댔다가는 당장에 개꼬리를 감추듯이 납작 엎드려가지고 허겁지겁 기어서 도망치기에 바쁠거라는 소문까지 다 나게 되었을까....
도대체 이 벌구 마을에 무슨 사연이 있었다지?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이 마을 사람들은 그토록 싸움을 잘하게 되었다지?
그러나,
그 사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고 자세히 얘기해 줄 수가 없다.
하도 오래전에,
너무도 오래전에 벌어졌던 얘기이다보니 실제로 보거나 겪어 봤던 사람들이 이제 모두 죽고 없어졌으니...
그러나 단 한가지,
입에서 입으로 말하여 전하고 귀에서 귀로 들어 기억 속에 남겨놓는 얘기가 하나 있었으니...
이제부터 영원히 변치 않을 벌구 사람들의 날렵한 몸놀림, 그리고 놀라운 싸움 솜씨에 대해 궁금했던 얘기가 여러분들의 눈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지고 또 남겨지게 될는지도 모르리라.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이제는 더위가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하는 어느 초여름날,
지극히도 보잘 것 없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털가죽으로 온 몸을 감아 두른 키큰 젊은 청년이 비틀거리며 찾아왔더란다.
그의 몰골을 대충 보아하니 저 멀리 북쪽 나라에서 산을 타고 내려온 사냥꾼 인 듯..
작고 가늘게 양옆으로 쭉 찢어진 채 위로 살짝 치켜올라간 두 눈매, 툭 불거진 광대뼈, 그리고 길쭉한 얼굴형이었으니 결코 잘 생겼거나 친밀감이 느껴진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착하고 인심좋기로 소문난 이곳 어촌 사람들은 아무런 스스럼없이 피로에 지친 그를 맞이하여 깍듯한 손님 대접을 해주었다.

바다에서 갓 잡아온 생선과 기름이 졸졸 흐르는 하얀 쌀밥,
그리고 밭에서 방금 뽑아온 싱싱한 야채들....
게다가 이곳 마을의 부자 하나가 크게 선심을 써가지고 자기집 방 하나를 내주었으니 그 키가 큰 청년은 그곳에서 며칠간 편히 지내며 오랜 사냥으로 지쳐버린 몸을 완전히 추스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제일 연장자인 어느 노인은 이 키가 큰 청년에 대해 처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머리를 계속 갸웃거렸다.

도대체 누굴까?
어디서 본듯한 얼굴인데... 과연 누굴까?
너무나 앳되어 보이는 얼굴로 보아서는 전에 내가 만났거나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마침내 그 노인은 마을 사람들을 널찍한 공터에 모두 불러 모이게해놓고는 그 키가 큰 청년에게 공개적으로 물어보았다.

"자네, 솔직히 털어놔 보게나! 어디에서 온 누구인가? 혹시 전에 한번 이곳으로 온 적은 없었는가?"

마을 사람들의 반짝거리는 수많은 눈동자가 이 청년에게로 일시에 모두 모아졌다.
모두들 숨을 죽이며 청년이 하는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청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기를 에워싸다시피한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며 덤덤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시다시피 저는 저 높고 험한 산줄기를 타고서 위로 한참 올라가야만 나타나는 북쪽 나라 사람입니다. 저의 아버님께서는 일찍이 이곳에 한번 오셨다가 잠시 머무신 후 북쪽나라로 다시 돌아가셨드랬지요. 저는 아버님의 유지를 받들고자 지금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조금도 망설이거나 주저함이 없이 쏟아내는 그의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분위기가 산만해지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이곳을 찾아왔다니...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옛날 이곳 마을을 한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니...
그,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이 서로서로 눈치를 보며 할말을 잠시 잊고있을 때, 청년은 마치 막아두고 있었던 봇물이 한꺼번에 터지듯이 다음 말을 줄줄 이어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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