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오원근 변호사

▲ 오원근 변호사

최근 충북지역아동센터가 주관하는, 사회복지사 등을 상대로 한 인권교육을 세 번에 걸쳐 하였다. ‘아동’의 인권이 주제인데, 난 ‘아동’보다는 ‘인권’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인권에 대한 이해가 먼저 되어야만 ‘아동인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권 하면, 필자는 먼저 프랑스혁명이 떠오른다. 프랑스혁명사 가운데서도 1792년 혁명군이 발미(Valmy) 전투에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무찔렀을 때, 프로이센 군영에 있었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Goethe, 1749~1832)가 했다는 말이 앞서 생각난다. “여기서 그리고 이날부터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는 혁명세력이 자신의 옥좌를 압박해오자,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혁명이념이 자기 나라로 전파되는 것을 두려워한 오스트리아 등과 내통하여 혁명군을 몰아내려고 하였다. 혁명세력은 발미 전투에서의 승리를 배경으로 수천년간 이어져 온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세웠다. 역사적으로 아주 오랜 기간 왕의 신민에 불과했던 백성이 이제는 나라의 주인이 되는, 대단히 획기적인 순간이었다. 괴테의 말도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것일 게다. 공화국의 특징은, 왕정과 달리, 권력이 세습되지 않고 백성들이 집권자를 뽑고, 집권자는 국민들의 의사를 공정하게 수렴하여 통치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3대째 세습을 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위와 같은 의미의 공화국이 아님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쫓겨나면서 대통령을 향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했다. 이는 우리나라도 진정한 공화국이 아니라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과정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논란이 있었고, 이후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나만 옳다는 생각으로 통치를 하여 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진정한 공화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 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도 아니고, 집권세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헌법 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의무는 국민 개개인의 인권보장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현대사는 어떠했는가? 해방이 된 후, 세계인권선언의 영향을 받아 공화국헌법을 만들었지만, 이승만은 집권연장을 위해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을 하고, 온갖 부정선거와 조봉암 사형 등 사법살인을 저질렀다. 박정희도 집권연장을 위해 3선개헌을 하고, 나아가 초헌법적인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영구집권을 도모하였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인권탄압이 있었고, 전두환도 이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집권하는 시기에,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집권을 위해 존재하고 국가기관은 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전락되었다. 사람들은 이들의 집권기간에 대해 1공화국, 3공화국, 4공화국, 5공화국이란 이름을 붙이는데, 이는 ‘공화국’이라는 이름에 대한 모욕이다.

인권은 국가와의 관계를 배제하고는 논할 수 없다. 유신정권의 예를 들자면, 유신헌법을 비판하기만 해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했다. 머리도 못 기르고, 치마의 길이도 나라가 정해주었다. 국가로부터 억압당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억압하고, 다른 사람들도 억압한다. 인권의 시작은 국가로부터의 자유·독립이고, 이것은 끊임없는 학습과 노력(싸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나마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도,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분들이 흘린 피땀의 대가다.

“모든 개인과 사회의 각 기관은 세계인권선언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한 채, 교육과 학습을 통해 이런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1948년 12월 발표된 세계인권선언의 일부다. 학습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의 노예가 된다. 요즘 난 노명식 교수가 쓴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두 번째로 읽고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