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16일 새벽, 미명의 어둠을 뚫고 박정희 소장이 탱크로 한강다리를 건너 쿠데타에 성공한 직후 발표한 이른바 ‘혁명공약’ 3항은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舊惡)을 일소한다’는 것 이였습니다. 4·19혁명 뒤 극심한 사회 혼란에 신물을 내던 국민들은 자유당치하의 고질적 부정부패에 진저리를 내던 터라 부패추방을 내세운 군인들의 거사를 그런 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1971년 4월25일, 서울 장충단 공원에는 백만 군중이 운집합니다. 이틀 뒤 치러질 7대 대통령 선거에 세 번째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 유세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몇 일전 그 자리에서 있었던 김대중 후보의 유세가 인산인해 속에 폭발적인 열기를 보였던 터라 이에 자극 받은 공화당은 이날 전국에서 1백만이라는 엄청난 당원을 동원해 기 싸움에 맞섰던 것입니다.
유세장의 분위기가 고조되자 박 후보는 “이번 한번만 더 본인을 지지해 주신다면 이 땅에서 영원히 부정부패를 추방하고야 말겠습니다”라고 호소하면서 격정을 못 이기는 듯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제스처를 보입니다. 그 시절 온 사회에 뿌리 박힌 부정부패의 척결은 대 국민 공약으로는 첫 손가락에 꼽히는 메뉴였고 그의 눈물은 10년 전 자신이 혁명공약으로 내세운 부정부패의 척결이 실패했음을 자인하는 것 이였습니다.
다시 그로부터 21년 뒤인 1992년 3월 7일 청와대 대 연회장. 열흘 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상견례를 겸한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김 대통령은 숟가락 을 들기도 전에 ‘폭탄선언’을 합니다. “나는 앞으로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그 누구로부터도 단돈 10원도 받지 않겠습니다.” 장내는 금방 놀라움으로 뒤 덮였습니다. 그 자신 돈을 받지 않겠다는 그 선언은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추방하겠다는 선전포고였던 것입니다. 위의 두 이야기는 필자가 일선기자로 뛰던 당시 두 사람과 지근 의 거리에서 직접 목격한 일화입니다.
지난주 김대중 대통령은 온 나라가 각종 게이트로 여론이 들끓자 “국민에게 죄송하다”면서 “반드시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권력의 핵심부서인 청와대가, 국정원이, 검찰이 썩고 정치권이 썩고 고위 공직자들이, 언론이 썩어있는 상황이니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사과는 당연해도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은 믿을 사람도 없을뿐더러 어쩐지 공허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박정희씨가, 김영삼씨가,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씨가 제아무리 부패추방을 외쳐댔지만 혁명동지들이 썩고, 당 동지, 측근들이 썩고, 아들이 썩고 심복이 썩었는데 추방은 무슨 추방, 가당찮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부정을 척결한다고 호언 할 수 있겠습니까. 실례의 말씀이지만 국민들의 귀에는 부질없는 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역사에서 부패의 추방은 지도자 한사람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 도 못한 일을 김대통령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시간도 없고 될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입니까. 진정 이 나라를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하는 묘책은 없는 것일까요. 진정 이 사회를 깨끗한 사회로 만드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나라의 장래를 위해 오늘 우리가 다함께 고민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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