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9년 서울 모신문사 수습기자로 입사해 용산경찰서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말이 ‘출입’이지 아예 24시간을 경찰서에 ‘진을 치고’ 사건과 현장을 챙기기 바빴다. 각 사의 수습기자들은 단신꺼리 사건이라도 먼저 찾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수사형사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때 경찰을 갓 출입한 필자의 눈에 비친 생경한 모습이 있었다. 상당수의 선배·수습기자들이 자신과 안면있고 나이많은 경찰관들을 ‘형님’으로 호칭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님이란 호칭으로 기자와 취재원간의 벽을 걷어내고 최대한 취재편의를 얻고자하는 직업의식의 발로였다. 다행히 필자가 몸담았던 신문사 선배들은 그러한 경찰기자들의 위악한 관행(?)을 따르지 않도록 말렸다. 하지만 ‘형님’이란 호칭에 익숙한 기자일수록 웬지 나보다, 우리 선배보다 정보수집력이 앞선 것이 아닐까 하는 초조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수습기간을 마치고 청주 주재기자로 발령을 받았다. 역사가 깊은 지방도시의 특성상 지연·학연·혈연에 따른 ‘형님’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에 군대기수까지 따지다보면 술자리 한번으로 형님, 동생이 되는 경우는 허다했다. 하지만 경찰수습 당시 ‘형님’에서 느낀 생래적 거부감 때문에 따라하기는 쉽지않았다. 술자리의 학교선배가 ‘형님’ 호칭을 쓰지 않는다고 정색을 하기도 했고, 지인을 통해 만난 나이많은 상대가 제안한 ‘형님’ 호칭을 거절해 어색하게 자리를 파하기도 했다. 어쩌면 사회 초년생에게 주입된 원칙론의 강박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용호게이트를 재수사하고 있는 차정일특별검사팀이 지난 13일 검찰총장의 동생인 신승환씨를 특가법상 알선수재혐의로 구속됐다. 이에앞서 4대 게이트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2차장과 법무부차관이 스스로 옷을 벗기도 했다. 정권 후반기의 레임덕 현상이 사정 중추기관을 궁지에 빠트린 전례는 적지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최고의 사정조직을 농단한 장본인은 비리기업이 내세운 ‘어줍잖은’ 로비스트들이었다. 물론 대단한 ‘몸통’을 배경으로한 ‘깃털’이기 때문에 무시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정치권의 식객, 검찰고위층 친인척, 조폭 보스같은 ‘어줍잖은’ 로비스트들이 어떻게 국정원, 검찰간부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을까. 바로 한치 건너 두치 속에 싹트는 우리네 ‘형님’ 문화 때문이었다. ‘우리가 남이갗라는 치졸한 인간고리가 ‘사정’은 간데없고 ‘청탁’만 남게 한 것이다.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호형호제’ 문화가 권력핵심에서 적나라하게 치부를 드러냈다.
원래 ‘형님문화’는 서열을 기본으로한 조폭문화의 근간이다. 여기에 영업직, 서비스업종 종사자들이 ‘형님’ 호칭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다분히 인맥구축용이라 할 수 있다. 형님이 많은 사회는 그만큼 서열화 되거나 연성화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불합리한 권위가 작용하고 맹목적인 연고가 개입돼 결국 사(邪)가 끼게 된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 라고 했던가. 인구 60만의 청주에 과연 진정한 내 ‘형님’ ‘동생’이 몇 명인지 되짚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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