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회사가 주도해 세운 노조는 설립 무효” 판결
창조컨설팅 동원해 노골적 탄압…최근엔 노동자 자살

▲ 법원은 유성기업(주)노조에 대해 “사용자가 개입해 만든 노조는 자주성과 독립성이 결여돼 설립무효”라고 판결했다. 사진은 법원으로부터 설립 무효 판결을 받은 유성기업(주)노조 현판

노동자 자살, 표적해고로 논란이 되고 있는 (주)유성기업의 노무관리가 법원의 판결로 도덕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창조컨설팅을 동원해 금속노조 와해를 시도한 것이 드러난 가운데 법원의 판결로 기존 노조를 대체할 새노조 설립에도 유성기업이 관여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어용노조를 앞세워 치밀하게 노조를 파괴하려 했다는 주장을 인정한 것이어서 유성기업의 ‘가학적 노무관리’ 논란은 깊어질 전망이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재판장 권혁중, 이하 법원)은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이 개입해 세운 노조 설립은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판결문에 “유성기업노조는 설립 자체가 회사 주도로 이뤄졌고, 조합원 확보나 조직 홍보, 안정화 등 운영이 모두 회사 계획 하에 수동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설립 및 운영에 있어 사용자인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자주성 및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로 유성기업노조가 회사와 맺은 임금·단체협약은 모두 무효가 됐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해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회사에 납품하는 유성기업에는 현재 두 개의 노조가 있다. 산업별 노동조합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과 2011년 금속노조의 파업이후에 만들어진 ‘유성기업노조’가 있다. 이번 소송은 금속노조가 유성기업노조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금속노조는 유성기업이 기존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유성기업노조’를 설립하는데 관여한 각종 증거를 제출했다.

금속노조측은 기업노조의 설립과정에서 규약, 총회 회의록, 조직적인 준비, 어용노조 가입 권유 물질적 원조, 노조활동에 대한 회사측의 지배개입 자료 등을 법원에 제출했다.

또 최근 확인된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에게 유성기업노조가 과반을 차지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던 자료들도 증거로 제출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을 보면 회사는 노조 설립부터 임금협상에 철저히 관여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각종 전략회의를 통한 창조컨설팅의 자문에 따라 유성기업노조의 설립을 위한 총회의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하였고, 2011년 7월 14일 개최된 유성기업 노조의 설립 총회는 위와 같이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적시했다. 이어 “총회 다음날인 2011년 7월 15일 유성기업 노조의 설립신고서가 접수되었는데, 위 설립신고서와 이에 첨부된 유성기업 노조의 규약은 앞서 본 전략회의에서 논의된 바에 따라 피고 회사가 작성하여 준 것”이라고 적시했다.

 

차별대우 드러나

현재 유성기업 노사는 지난 달 17일 자살한 이 회사 노동자 한광호씨의 죽음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금속노조는 한 씨의 죽음이 “금속노조에 대한 가학적이고 차별적인 노무관리에 의한 타살”이라고 주장하며 집회와 부분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법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유성기업이 금속노조에 대한 차별적인 노무관리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 2011년 임금협상에서 유성기업은 전략회의에서 유성기업노조 조합원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논의된 바에 따라 유성기업노조와의 임금협상은 신속하게 진행한 반면, 금속노조와의 임금협상은 쉽사리 합의에 이르지 못하도록 했다”고 적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성기업은 2012년 임금협상을 앞두고 유성기업노조가 과반수 노조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불투명하자 앞서 전략회의에서 유성기업 노조 조합원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논의된 바대로 회사 관리직 사원들이 유성기업 노조에 가입하도록 했다.

이로써 과반수 노조가 된 유성기업노조는 노동법의 교섭창구단일화절차에에 따라 독점적인 교섭권을 확보했다. 이 뒤로 금속노조는 지금까지 회사와 임금과 단체협상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소송을 맡은 김상은 변호사는 “유성기업노조가 자주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였다”며 “사업장마다 다르겠지만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다른 노조파괴 사업장에도 이 판결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성민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이번 판결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투쟁한 조합원들 덕분에 이 판결이 나왔다”며 “유성기업지회 투쟁의 정당함을 다시 확인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노조파괴 범죄자 유성기업·현대차 자본 처벌, 한광호 열사투쟁 승리, 범시민대책위’(이하 유성기업 범대위)는 “유성기업의 노조파괴가 끔찍한 범죄임을 확인한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유성기업은 2011년 5월18일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파업에 돌입하자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같은해 7월15일 유성기업노조를 설립하는 등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노조파괴 공작을 벌였다. 이중 2011년 직장폐쇄는 법원에 의해 부당한 공격적 직장폐쇄로 판결 받았다.

또 이 과정에서 회사는 금속노조 조합원 30여명을 해고했지만 법원은 부당한 해고라고 판결했다.

유성기업은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유로 다시 11명의 노동자를 해고 했다. 유성기업은 최근까지 금속노조 조합원을 상대로 징계와 고소, 고발을 남발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회사가 고소한 사안이 1000건이 넘는다. 지난 3월17일에는 회사의 징계 사전 절차인 출석요구를 받던 한광호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