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앨리스>…잘나가던 50대 여성이 만난 병, 그 이후

애매한 팝콘
김규원 충북학연구소장

▲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감독 리처드 글랫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출연 줄리안 무어, 알렉 볼드윈,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트 보스워스

알츠하이머병으로 세상을 떠난 리처드 글랫저의 유작 <스틸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줄리안 무어)는 대학 교수로, 엄마로서, 아내로서 성공한 삶을 살던 50대 초반의 어느 날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을 받는다.

병세는 급속히 악화되고 그러던 중 알츠하이머협회로부터 온 강연 의뢰에 기억과 자아, 그리고 정체성 중심으로 발표를 하는 등 차분하고도 체계적으로 병의 진행과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한다. 한편 남편 존(알렉 볼드윈)은 자신의 사업과 아내의 간병 사이에 갈등을 하고, 결혼한 첫째 딸 애나는 유전자 검사에서 알츠하이머 양성판정을 받았지만 임신을 결심하게 된다.

막내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는 LA에서의 연기자 생활을 접고 병간호 등등을 위해 집으로 돌아오고, 어머니의 우발적이면서도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등등 기억이 마지막 모닥불 연기처럼 사라지려고 할 때 앨리스는 문득 노트북에 자신이 병세가 초기였을 때 만든 나비 앱을 보게 된다.

가족이 아무도 없을 때 옷장 서랍 속에 숨겨진 파란 병을 꺼내서 물과 함께 마시라는 내용이었다. 나비처럼 혹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라는 뜻이었을까. 영상은 이미 세상을 떠난 언니와 바다를 걷는 뒷모습을 흐릿하게 비친다. 감상은 여기까지. 이 영화는 패미니즘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는 물론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의도로 관련단체가 저렴한 입장료를 미끼로 만든 행사였는데 의외로 많은 관람객이 들었고, 나는 보조의자에 앉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1. 병든 여성은 버림받는 현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시한부의 삶을 산다면? 이런 질문을 몇몇 남편들에게 던지면 여러 가지 태도를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답변의 내용과 관계없이 경제 문제와 재혼이라는 공통적인 주제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아내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기억을 잃거나 떠나더라도 남은 삶을 살 아이들과 철없는 남편걱정에 나름대로 준비를 하려고 한다는 대답과는 대비가 되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엄마들은 몸이 아파도 가정이나 직장에서 할 일을 다해야하고, 그러다 중병에 걸리면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버림을 받아요’라는 관련 전문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2. 병들지 않은 여성도 고통받는 현실

이 전제는 사회정의 측면에서 매우 잘못되었지만 현실임에는 분명하다. 즉 영화처럼 알츠하이머 감염과는 관계없이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국가나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아오지 못했다. 대규모의 전쟁이나 사회적인 갈등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물론이었고 여성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지키어 온 국가, 사회,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음, 외면, 시기, 질시, 무시 등을 받아왔고 이는 딸이라는 또 다른 자아에게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적 차원의 폭력적 행위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전통과 관습이라는 탈을 쓴 엄숙과 권위는 여성들의 발목을 잡아왔다.

똑똑하고 일 잘하는 여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직장 내의 상급자의 시선은 물론 심지어 여성 국회의원이 이런 여성은 사회적으로 불편하다는 인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당신들만의 천국에서 여성은 소수, 약자, 피해자의 지위를 떨쳐낼 수가 없다.

하여 자신의 남친이 결코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와 같은 이가 아님에 더욱 이 드라마에 열광하여 차별하는 세상을 잊고 싶고, 드라마를 보는 순간만이라도 고춧가루 묻는 술잔을 돌리는 남자 상사를 잊고 싶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남성들의 임금이 동일 업무의 여성에 비해 37%나 많이 받는 사회라는 것. 영화에서 막내딸 리디아가 읽어주는 이야기는 무엇이든 사랑에 관한 내용이라고 흐릿하게 대답하는 앨리스의 태도 역시 이러한 현실을 근거로 봤을 때는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설득적이지도 못하다. 이미 우리는 남궁옥분의 노래 중에 나오는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향기로운 꽃보다 진하다고’라는 가사를 기억하기에는 너무도 차별과 폭력을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니까 하면서 라면 먹고 갈래가 데이트 폭력으로 연결되고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야가 학교폭력으로 둔갑하는 현실을 말이다. 미안하다 그러나 사랑이 다가 아니며 정답도 아닌 것이다.

3. 기억으로 구분하기

기억과 정체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은 동물보다 좀 더 긴 유효기간의 기억 즉 경험한 내용이 뇌 속에 장기간에 걸쳐서 저장되었다가, 의식 세계로 꺼내져 재생된다고 한다. 이 저장내용에는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관한 것을 중심으로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집단을 구분하게 하는 차별화된 특성에 관한 부분도 포함한다. 그렇다면 내가 나의 기억을 잃어버리면 나는 나일까 아닐까. 이런 점에서 영화 제목이 Still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4. 마무리

서양의 경우 치매는 정신이 없어지는 것, 정상적인 마음에서 이탈된 것이라는 의미의 라틴어dementatus에서 유래하지만 치매를 漢字로 적으면 어리석거나 미련할 치, 어리석을 매라고 한다. 정상/비정상, 남성/여성, 강자/약자의 이분법이 또다시 확인되는 순간이다.

최근 미국의 여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평등을 의미할 뿐이라며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을 성차별주의자로 부르자고 했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평등에 대한 접근이기에 인간의 보편적 삶의 향상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이 좀 더 부각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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