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홍강희 편집위원

▲ 홍강희 편집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선관위는 선거 독려 동영상을 공개했다가 선정성 논란이 일자 결국 삭제했다. 한 때 이 동영상은 페이스북 등에 많이 떠돌아다녔다. 나도 이 동영상을 보고 여간 놀라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 동영상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소개한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소개팅을 한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하더니 대뜸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대화를 나눈다.

소개팅녀: 오빠, 혹시 그것 해 봤어요? 오빠가 지금 생각하는 그거요.
소개팅남: 아...초면에 벌써부터 진도를...저 근데, 진짜 저랑 하고 싶으시다는 건지
소개팅녀: 오빠랑 하고 싶기는 한데 아직 그 날이 아니라서...
이 동영상 광고는 ‘4월 13일 그들의 희망이 이뤄진다’라는 자막이 나오면서 끝난다.

여기 출연한 여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심’을 홀릴 만한 표정을 지었고, 마지막에는 은근히 손을 잡으며 “오빠랑 하고 싶기는 한데 아직 그 날이 아니라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성은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편다. 여성이 그것 해봤느냐고 하자 뽀뽀하는 상상까지 한다.

중앙선관위 대변자는 지난 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유투브에 게시하기 위해 제작한 동영상인데 ‘오 나의 귀신님’이라는 드라마를 패러디해 만든 영상물이다. 내용이 선정적이라고 해서 3월 30일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관공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들었다면 이런 논란은 적었을 것이다. 우리가 트렌드만 좇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개인이 만들어도 이렇게 저급하지는 않을텐데 하물며 국가기관이 이렇게 하다니. 그런데 선관위 대변자는 방송에 나와 관공서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고 말했다. 더욱이 그는 이것이 트렌드라고 했다. 아무리 찰나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국회의원 총선거와 성관계를 동일시 할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이런 것이 요즘 트렌드도 아니다. 이런 것이 트렌드인 시대는 없었다. 해명조차 우습다.

이 동영상을 보고 나서 투표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영상 내용과 선거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식적인 영상물을 만들면서 사전 회의나 사후 심사조차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누가봐도 문제를 제기할 만한 내용인데 버젓이 공개됐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선관위는 또 요즘 가장 잘나가는 스타 설현을 모델로 내세워 TV 광고를 제작했다. 설현의 아름다운 고백-화장품 편과 스마트폰 편에서는 화장품·스마트폰은 꼼꼼하게 고르면서 국회의원 후보는 그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설현의 아름다운 고백-엄마 생신편’에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엄마의 생신에 참석하지 않으려는 여동생을 나무라는 오빠의 모습이 담겼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에 대해 성차별적이며 청년 유권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며 배포 중단을 요구했다. 여성이 정치·사회적인 문제만큼 중요시하는 것이 화장품, 즉 외모라는 성별 고정관념에 기반하고 있어 성차별적이고 화장품과 스마트폰은 열심히 고르고 바쁘다는 핑계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청년을 꾸짖는 게 청년 유권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젊은층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기는 하지만 이런 소재를 가지고 투표 독려를 한 것은 적절치 않다. 결국 광고와 동영상은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고 설득력조차 얻지 못했다. 선관위는 세금은 세금대로 낭비하고 국민들에게 비난만 실컷 받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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