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이헌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이헌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벌써 3월이 지나고 4월에 접어들었다. 지난 3월은 ‘알파고’ 충격 때문에 한 동안 머리가 복잡했다. 바둑만큼은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영역이라 굳게 믿어 왔건만, 바둑의 신으로 불리는 이세돌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은 흥분을 넘어서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인간들은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까’라는 탄식이 이어졌고, 나아가서 영화 ‘터미네이터’가 공상이 아니라 조만간 현실이 될 것이라는 걱정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좁은 나무판 위에서 ‘경우의 수’를 풀어가는 알고리즘 게임인 바둑에서 ‘알파고’가 실력을 발휘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밖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능가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즉 바둑판은 가로 19줄과 세로 19줄의 평행선으로 되어 있고, 바둑알을 놓을 수 있는 착점은 총 361곳에 불과하다.

따라서 고작 361곳의 착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예측하는 게임에서, 통계와 연산 프로그램을 장착한 1200대의 슈퍼컴퓨터가 인간을 이긴다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다. 반면에 변화무쌍한 전략과 판단이 필요한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적 게임에서는 여전히 알파고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결국 ‘알파고’는 어차피 창의적 인간들이 만들어 낸 연산기계에 불과하다고 정리하면 머릿속이 후련해진다.

그런데 4월의 문제는 쉽게 정리하기 어려울 것 같다. 4월이면 많은 대학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구조조정은 취업률이 떨어지는 학과들을 없애는 것이다. 철학과, 심리학과 그리고 역사학과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고, 요즘에는 대학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국문과와 영문과마저 폐과되고 있다. 원인은 취업 때문이다.

삼성그룹이나 SK 신입사원 가운데 80%가 이공계 전공자이고 심지어 현대자동차그룹은 공채에서 이공계만 모집한다. 이런 양상은 대기업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기업에서 동일하다. 이로 인해 전국 대학 인문계학과 중 취업률이 0인 곳이 무려 402곳이나 된다고 하니 ‘인구론’(인문계 90%는 논다),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 등의 신조어가 그저 생겨난 말은 아닌 듯하다.

여기에 교육부는 한술 더 떠서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하고 인문계를 축소하도록 대학을 압박하고 있다. 혹자는 과학기술발전이 국가적 명운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때에 아직도 인문학 타령이나 하고 있다고 타박할지도 모른다. 물론 과학기술은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방의 기술이 아니라 신기술이나 첨단기술이 필요하다면 인문학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세계 최첨단 회사인 구글에서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글은 2011년에 신규채용 6,000명 중에 5,000명을 인문학 전문가로 뽑았고 그 결과로 ‘알파고’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구글이 인문학 전공자를 뽑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글이 요구하는 인재는 단순 기술자가 아니라 창의성을 갖춘 인재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그런 창의적 인간·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인재의 아이디어를 컴퓨터 기술과 접목하여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신기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창의성은 인간의 본질과 삶의 양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통해 길러진다. 즉 인문학이 바로 창의성을 배양하는 기초가 된다는 말이다.

이렇듯 첨단기술 분야에서 인문학적 창의성을 강조하며 발전하고 있는 구글은 고용불안과 수출경쟁력 악화라는 이중고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문학의 씨를 말리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알파고’는 이 순간에도 첨단기술 속에 숨어 있는 인문학의 가치를 발견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그것을 듣지 못하는 우리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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