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그날은 여지없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를 조짐이다. 세월호 참사 2주년을 앞두고 지난해와는 또다른 사회각계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4.13 총선의 막판 정국과 겹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 심산하다.

우선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의 개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속에 쇼셜펀딩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개봉관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젠 세월호는 잊어야 한다”며 끊임없이 주문을 외워대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는 당연히 기피의 대상이다.

전교조는 오는 16일까지를 세월호 집중기간으로 정해 학생들을 상대로 계기교육을 강행하겠다고 밝혀 교육당국과 대립하고 있다.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사회현안에 대해 학생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는다는 계기교육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번에도 이념갈등으로 번지면서 사회분위기를 옥죄고 있다. 서울시청 청사의 유리벽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색의 대형 리본이 부착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여기에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9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 있다.

2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2014년 4월 16일 오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와 똑같은 압박감을 그대로 느낀다. 아니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당시의 상황이 환상과 환청으로 다시 보이고 들리는 것같아서 여전히 전율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태우고 운항하던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첫 뉴스에 화들짝 놀랐다가 곧 이어 흘러나온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마음을 놓는 것도 잠시, 뒤늦게 TV화면에 나타난 기울어진 세월호를 보고선 설마? 설마?를 되뇌이며 온갖 상상에 모골이 송연해지던 그 시간을 많은 국민들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엄습하던 그 음습함은 2년의 세월에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이 사건은 이제 서서히 잊혀져야 정상이다. 인간의 감정이란 2년이 아니라 단 2개월만 지나도 희석되고 또 지쳐버린다. 그래서일까. 어렵게 시작된 1, 2차 청문회는 언론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많은 사람들은 “시체장사 그만 하라”며 유족들에게 비수를 들이대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세월호 참사도 역사와 기억으로 돌려놓을 시점은 분명히 있다. 사고에 대한 진실이 규명되고 아직도 맹골수도의 차디찬 물속에서 헤매고 있을 실종자 9명을 확인하는 시점이 바로 그 때다. 세계 역사를 보더라도 원인규명이 안 된 사건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역사가 무섭다는 것은 그 어떠한 사건과 현상에도 거기엔 반드시 원인과 결과에 대한 규명, 책임이 있고 또 이것이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는 말도 안되는 304명의 떼죽음이라는 반 인간, 반 문명의 결과만 나와 있지 아직도 그 원인은 흔들림없이(?) 숨어 있다.

집권세력의 갖은 방해 속에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시한은 오는 6월로 종료될 조짐이다. 19대 국회에 계류중인 특조위 활동 연장을 위한 개정법률안은 20대 총선에서 다수당이 뒤바뀌지 않는 한 어차피 사장될 운명이다. 현재 중국 업체가 진행중인 세월호 인양은 이르면 7월 늦으면 9월 쯤에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양된 후에도 진실규명을 위한 믿을만한 조사는 초장부터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청문회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역시 “(사고 당시) 대기하라는 선내방송이 청해진해운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는 이곳 해운사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것만으로도 정상적으로 퇴선명령을 내렸고 구조활동도 매뉴얼에 따라 진행됐다는 그들의 말이 얼마나 새빨간 거짓말인지는 극명하게 드러나고도 남는다. 진실은 결코 감옥속에 가두어 둘 수 없듯이(조영래) 진실은 또한 절대로 맹골수도에 영원히 수장시킬 수 없음을 우리는 비로소 그 첫 단초로써 확인하게 된 것이다.

영화 ‘업사이드 다운’(upside down)은 말 그대로 거꾸로 뒤집혔다는 뜻이다. 당장 세월호를 연상시키지만 작품을 만든 감독은 그보다도 우리 사회의 일상에서 상식과 기본이 뒤집히고 있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곧 개봉을 앞둔 이 영화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자막으로 시작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누누이 강조했던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한 상징적 의미라고 감독은 말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모든 위정자들이 하나같이 약속한 것은 나라의 정상화다. 국가관리와 위기대처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고 국민들의 의식 또한 혁명적으로 바꾸겠다고 경쟁적으로 외쳐댔다. 그런데 지금 과연 그렇게 변했는지를 자문해 본다. 2년이나 지나서 말이다. 한데 실상은 국회의장조차 드러내놓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일갈하고, 사회는 더욱 더 이념과 빈부갈등으로 빠져들면서 과거보다도 더한 혼돈을 양산하고 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이 오늘 다시, 세월호 희생자들을 억울하고 슬프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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