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어린 친딸을 살해 암매장한 사건이 결국 ‘시신없는 유기사건’이 될 처지에 놓였다. 경찰은 5차례에 걸쳐 계부가 지목한 진천군 야산을 뒤졌으나 시신을 찾지 못했다. 피어 보지도 못한 채 꺾인 네살바기 안승아양의 원혼을 생각하면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된다면 이땅의 많은 부모들은 또한번 가슴을 칠 것이다.

이번 사건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전형적인 아동학대 살해사건이다. 친모가 자식의 생명을 빼앗고 계부가 암매장으로 덮어 완전범죄가 될 뻔 했다. 모두의 믿음이자 희망인 ‘가족’을 해체하는 잔혹한 중범죄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사건의 뒷면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제 손으로 자식의 생명을 빼앗은 친모 한씨는 2007년 아기 아빠도 없는 미혼모로 안 양을 낳았다. 안양은 낳자마자 사회복지시설에 맡겨졌고 4년뒤 안씨와 결혼하면서 엄마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계부 안 씨 또한 성장과정이 녹록지 못했다. 형제자매도 없는 독자라서 부모를 여의고나서 친척과도 왕래가 끊긴 채 살아왔다는 것.

결국 부부는 우리 사회의 어둡고 고단한 최저생계의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자살한 한 씨의 메모식 수첩내용을 보면 부부간의 갈등이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마다 분노의 감정이 아이에게 투사돼 학대로 이어진 셈이다. 물론, 결혼과 함께 사회복지시설에 맡겼던 친딸도 데려왔으니 의욕적으로 새출발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미혼모 상처를 가진 아내와 천애고아처럼 성장해온 남편의 새출발은 우리들의 상식과 달랐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부부는 사랑을 주는데도 서툴렀다.

이번 사건을 측면에서 바라보면 또다른 민낯이 드러난다. 과연, 잔혹한 범행이 5년간 은폐될 동안 우리 사회의 공적기능은 제대로 작동했을까. 이번 사건은 청주 모주민센터 공무원 A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A씨는 학교측의 의뢰를 받고 안 양의 외가에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계부 안모씨를 추궁하자 “경기도의 한 보육원 앞에 두고 왔다”는 말을 듣고 즉각 신고했던 것. A씨의 적극적인 대처가 없었다면 이번 사건은 ‘완전범죄’가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동주민센터 공무원 A씨가 매뉴얼대로 업무를 진행한 반면 아쉽게도 그 반대의 정황이 드러났다. 2014년 4월, 그때도 안양의 초등학교에서 동주민센터로 소재파악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담당직원은 안 양 부모와 통화가 여의치않자 그 선에서 마무리하고 말았다. 업무 매뉴얼대로 초등학교측에 회신도 보내지 않았다.

안 양이 입학 배정받은 초등학교도 업무상 헛점이 드러났다. 아이는 입학식부터 나타나지 않았고 부모는 전화상으로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기만 했다. 결국 동주민센터로 소재파악 협조공문을 보냈지만 회신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학교측은 그해 6월 안 양을 ‘정원외 관리대상자’로 분류했다. 사회의 공적 그물에서 빠져나간 미아를 만든 셈이다. 이때까지 학교측은 부모와 전화통화만 했을 뿐 가정방문 등 면담조사는 없었다. 언론은 엽기적인 부부의 흉악범죄로 연일 중계 보도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사건의 뒷면과 측면을 간과한다면 이런 범죄는 또다시 재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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