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신철우 서예가

▲ 신철우 서예가

유배(流配)라는 말은 유쾌한 단어가 아니다. 오랜 시간 세상과 단절되어 독거해야 하는 유배는 암울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날 찬란한 문화유산이 된 작품들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유배 중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 중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은 500여편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저서를 대부분 유배지에서 정리했다. 그리고 훗날 이를 모아 여유당전서가 편찬되는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각설하고 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가계(家戒)를 적어 아버지의 마음을 전한 하피첩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피첩은 다산의 부인 홍혜완이 시집올 때 입고 온 붉은 치마저고리를 유배지에 챙겨 보내는데, 다산이 이 천을 오려 자식들에게 가르침이 될 글을 쓴 것이다.

이 서첩에서 다산은 자식들에게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을 강조했다. 그는 “나는 전원(田園:농장)을 너희에게 남겨줄 수 있을 만한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오직 두 글자에 절대적 믿음이 있어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었다”며 “근검, 이 두 글자는 좋은 논밭이나 비옥한 토지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되새겨도 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울 게 없는 도덕적 용기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대장부의 마음가짐은 마땅히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과 같아서 털끝만큼도 거칠거나 가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과 남에게 부끄러운 짓은 칼로 끊은 듯이 범하지 않아야 자연 마음이 넓어지고 몸에는 공명정대한 기운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만약 한 자의 베나 몇 푼 재물에 끌려 마음을 져 버리는 일이 있게 된다면 기운이 위축되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자신의 처한 삶속에서 자식들이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선비의 중심을 지켜나가고자 쓴 훈계의 글들은 지금도 전해지는 것이 매우 많다. 그 중 하피첩은 홀로 집안을 꾸려가야 했던 부인 홍혜완의 힘겨운 삶과, 유배지로 보낸 남편에 대한 가슴 절절한 그리움들이 담겨 있어 아름다운 감동을 준다.

그리고 유배지에 부인의 사랑을 담아 자식들에게 남겨주고자 한 아버지의 가족애와 교육적 실천은 시대를 넘어 감동을 준다. 다산의 가르침은 아들 학연과 학유는 물론 지금의 모든 후학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글이다.

‘비 갠 뒤 맑은 바람과 밝은 달’과 같이 털끝만큼도 거칠 게 없다면 얼마나 당당할 것인가. ‘하늘과 남에게 부끄러운 짓은 칼로 끊은 듯 범하지 않아야’한다는 그 단호함은 국민들이 바라하는 정치인들의 표상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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