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사실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현재 세 사람의 심정이야 누가 뒤에서 갖은 위로의 말로 토닥거려준다고 해도 결코 편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 이유는 다르겠지만 졸지에 정당을 뛰쳐나와 무소속 출마를 결행하기까지는 거기엔 남들이 모르는 수많은 격통과 고민이 따랐을 것이다.

어차피 선거라는 것은 당시의 여론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기에 이들의 무소속 출마에 대한 주변의 얘기는 분명 각자의 득표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물론 사석에서 회자되는 내용들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보름밖에 안 남은 총선임을 감안하면 설령 그것이 실제와 다르더라도 그들을 향한 유권자들의 촉각은 어쨌든 움직인다.

세 후보 모두 당선의 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은 그 이면에 더 있다. 우선 권태호 후보의 무소속출마는 자신을 음해해 초장부터 컷오프되는 데 기여한(?) 경쟁자를 응징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들 말한다. 출마회견에서도 본인 스스로가 이러한 뜻을 밝힘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오랫동안 당협위원장을 맡아 지역구를 다져 온 김준환 후보 역시 자신에게 경선의 기회조차 박탈한 당의 처사에 반발해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라는 강수로 맞섰다. 한대수 후보의 경우는 앞의 두 사례보다 더 직선적으로 들려 온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청주시장)에서 자신을 돕기로 했다가 되레 경쟁자를 도운 같은당의 후보를 겨냥해 청주 서원구에 출마했다가 경선에서 떨어지게 되자 이번엔 다시 그 배신의 배후인물을 고사시키기 위해 선거구를 옮기면서까지 무소속출마를 결행했다는 게 대체적인 얘기들이다.

이들이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약속파기라는 1차적인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컷오프가 됐던 경선이 됐던 당으로선 공천에 관한 일정한 룰(rule)을 정한 상태에서 그 절차를 밟아 결과를 공개한 것인데도 여기에 불복했기 때문이다. 조직의 크고 작음을 떠나, 더 나아가 한 국가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유지되는 힘은 정해진 약속에 대한 존중과 이행에 있다. 이것이 무시된다면 단 둘만의 관계에서조차도 공존은 불가능하다. 굳이 표현한다면 악법도 법이고, 그러기에 사회와 국가라는 유기체엔 늘 누군가의 희생과 인내가 따랐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데 이번 공천과정은 ‘악법도 법’이라는 이른바 작위적인 인식마저 너무 유린하고 말았다. 가장 기본적인 법치는 고사하고 과거 6,70년대보다도 더한 민주주의의 파행을 마구잡이로 자행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에게 “우리나라가 지금 제정신인가”를 되묻게 한 것이다. 특정인 감정에 의한 사천(私薦)을 넘어 정의화 국회의장의 말대로 주군에 반하는 후보들은 꼭 죽이고자 덤벼든 사화(士禍)로 점철된 것이다.

만약 권태호 김준환 한대수가 “악법은 법이 아니다”고 외치며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면 우리로선 할말이 없다. 요즘같은 형국에선 배신자가 아니라 오히려 혁명가(!)라는 딱지를 붙여도 무리가 없다. 결코 적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그리하여 우리나라 정당의회주의와 민주주의를 무려 3, 40년 뒤로 후퇴시킨 20대총선의 공천 정국에서 이들의 무소속 선택은 차라리 눈요기 거리라도 되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들이 그럴만한 자질을 갖추었고 또 앞으로도 그만한 정치적 역량과 금도를 보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본인들 스스로가 이에 자신있다면 끝까지 완주해서 당당하게 유권자의 심판을 받기 바란다. 안 그러면 더 이상 선거판에 민폐를 끼치지 말고 후보 사퇴의 시한을 고민할 것도 없이 발을 뺐으면 한다. 유권자의 입장에선 이들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건 당선여부가 아니라 끝까지 가느냐 마느냐 하는 진정성에 대한 확신이다. 만약 누구라도 중도에 사퇴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기망을 시민과 유권자에게 안기게 될 뿐이고 스스로의 정치생명 또한 그것으로 끝이다.

스스로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이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 있다. 다름아닌 세기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정치적 처세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마키아벨리가 후세에 남긴 통찰(洞察)이다. 그는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힘 뿐이다”면서 “운명이 제 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견제하라!”고 설파하면서도 “올바른 모범을 보여주는 것은 무한한 자선보다 낫다”고 사족을 달았다.

오직 유권자만을 위하겠다며, 그리고 꼭 일하고 싶다면서 ‘무한의 자선’을 약속하고 있는 이들 세명의 무소속 후보들이 그동안 ‘올바른 모범’을 보여줬다고 판단된다면 우리는 앞뒤가리지 말고 찍어서 썩어문드러진 기성정치에 경고음을 울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누가 해당될까? 과연 있기는 한 것인가? 그 정답은 보름 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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