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이 헌 환 (서원대 법학과 교수 )

며칠 전 여당은 지난 2월에 제정되었던 친일진상규명법의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였다. 제정 당시부터 찬반논란으로 누더기가 되어버린 친일진상규명법을 제대로 된 법률로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반가운 일이다.
해방 후 독립국가건설의 제1차적 과제가 친일잔재청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장애로 인하여 잔재청산이 실패로 끝났다. 해방이 우리 스스로의 힘에 의하지 않고 연합국의 승리로 얻어졌고, 전승국인 미군이 남한에 진주하여 남한정부수립의 과정에서 친일파를 포함한 인적 자원과 식민지통치기구를 그대로 존속시켰으며, 그로 인해 남한의 정치세력이 미군정의 의도에 따라 분열되면서 친일파들이 재등장할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고,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대립구조에서 친일-반일의 대립구조가 반공-친공의 대립구조로 변화되어 친일파들이 반공주의자로 변신할 수 있게 해버린 것이다.
해방 후 60년이 다 된 이 시점에서 왜 아직도 친일진상규명이 필요한가! 그것은 친일행위자들의 매국 및 반민족행위의 결과가 아직도 현재의 시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일제의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하였던 자들이 일본의 대륙침략을 묵인함으로써 간도협약으로 우리나라가 간도지역을 상실하게 하였고, 국권강탈 후에는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적극 동조하여 동포들에 대한 수탈정책을 시행케 하였으며, 독립운동가를 투옥하고 임시정부를 핍박하는 데에 앞장섰고, 급기야는 이 땅의 남녀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몰아 억울한 죽음과 고통 속에 내동댕이쳤으니 우리 동포의 한이 수백년이 지난들 어찌 잊혀질 수 있겠는가? 더더욱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들은 그대로 잔존하여 국가의 중요기관에 포진하여 정책수립과 집행에 깊숙이 간여하면서 식민시대의 통치방식과 의식을 그대로 이어왔으니 그로 인한 우리 사회의 질곡과 고난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친일파청산의 시급성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의 후손이 이완용 명의의 땅을 되찾기 위하여 소송을, 그것도 대한민국의 법원에 제기하여 승소하고, 이재극의 후손이 조상인 이재극 명의의 땅을 되찾겠다고 소송을 진행 중이며, 시민들이 애써 되찾아 놓은 부평 미군기지 땅을 송병준의 후손이 자신들의 것이라 하여 반환소송을 제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사상의 소유권이라 하여 민법규정에 근거하여 반환소송을 제기하면서, 이를 부인하는 것은 과거 조상들의 잘못을 후손에게 덮어씌우는 것으로 현대판 연좌제라고 강변한다. 연좌제는 친척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조상의 행위로 인하여 자신의 재산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지만, 거꾸로 말하면 후손은 과거 조상의 잘못으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 하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은 개인 소유의 것이 아니라 국가소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해방 후 성립한 대한민국의 헌법은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지만, 이 보호되는 재산권 속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을 부정한 자들이 대한민국의 법에 따라 재산권을 보호받겠다는 것은 그 법을 선언하는 법원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을 부정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군정 3년 동안 우리 국민의 친일청산의 의지는 미군정에 의하여 꺾이고 말았지만, 1948년의 제헌헌법은 그나마 부칙에서일지라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처벌과 재산몰수의 근거규정을 두고 있었고, 그에 따라 제정·시행되었던 것이 반민족행위처벌법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방해로 반민특위법의 시행이 좌절된 후, 친일진상규명과 그 처리에 관한 어떤 법도 제정되지 못하였다.
이제 진정 시급한 과제로서의 친일진상규명과 그 처리의 문제가 실현될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친일진상규명의 문제를 당리당략으로 접근하지 말고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숭고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처리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더불어 현실적인 문제로서 반민족행위자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도 조속히 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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