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박세복 영동군수가 모친의 장례식 때 들어 온 부의금 1억원을 군민장학회에 기탁해 화제가 됐다.

세인들의 반응은 당장 두가지로 나뉘었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1억원이라는 거액이 알아서(?) 모아질 만큼 일선 자치단체의 지방권력이 막강하다는 것과, 넉넉치 않은 자연인의 형편에서 그러한 큰 돈을 선뜻 내놓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일종의 경외감이다.

사실 박 군수의 통 큰 기부는 이것만이 아니다. 군의원 시절엔 4년치 의정비 전액인 9600만원을 역시 장학기금으로 내놓았고 지난해에는 정부가 제안한 청년희망펀드에 도내 자치단체장으로선 가장 먼저 500만원을 쾌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의 기부행위를 자치단체장의 위상과 연계시켜 해석하면 자칫 그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다. 전국의 유사 사례를 보면 개중엔 개인 치적을 위한 홍보용으로 종종 포장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군수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가 지방의회 활동을 거쳐 자치단체장 출마를 고민할 당시 주변에선 이런 우려가 제기됐다. 평생 사업으로만 잔뼈가 굵은 처지에 제 아무리 지방의정을 경험했다고는 하지만 행정 수반이 되기엔 여러 난맥상이 있을 거라는 예단이었다. 자치단체장을 맡기엔 그동안 살아온 이력이 좀 거칠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그 때 그는 보은의 한 사석에서 이런 말을 던졌다.

“의회활동을 하다보니까 내가 뭘 모른다는 게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솔직하게 묻고 배우다보니 오히려 불편함이 덜했다. 모든 일을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겠다. 자치단체장의 가장 큰 소임은 무슨 역할에 앞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전제돼야 책임자로서의 결단도 가능하다고 본다.”

실제로 그는 2014년 7월 37대 영동군수로 취임하면서 이를 위한 첫 일성으로 “불필요한 형식과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공무원 조직을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기동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고스란히 군정에 투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계속되는 기부행위는 바로 이러한 낮은 자세, 자신에 대한 솔직함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도내 관가에서 가장 호평받는 자치단체장 중에 한명도 바로 인간 ‘박세복’이다.

여자 프로골퍼에 김해림이라는 선수가 있다. 연고는 없지만 청주시 오창에 거주하는 것이 계기가 돼 1억원의 기부를 약속한 충북아너소사이어티 11번째 가입자이다. 올해 27세인 그녀는 프로생활 10년이 다 되도록 단 한차례의 우승이 없는 선수로 더 유명세를 탄다. 톱 텐(10위 이내)을 밥먹듯이 기록하며 최근에는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 번번이 최종 라운드에서 역전패하는 바람에 도내 팬들로부터도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1순위 선수로 손꼽힐 정도다.

그녀가 팬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기부천사라는 닉네임을 갖게 한 선행 때문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대로 매년 투어상금의 10%를 내놓는 것 외에도 ‘틈만 나면 봉사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주변에 두루두루 기부를 해오고 있다.

연간 10억여원 수입에 누적상금 100억원 대를 기록하면서도 기부에는 인색한 유명선수가 즐비한 상황에서 그녀는 우승한번 못한 주제에 기부만큼은 단연 톱을 달리고 있다. 막상 그녀의 가정 형편은 성적이 시원치 않은 오랫동안 자신의 쌈짓돈 수입으로 버텨야 할 만큼 여의치가 않았다고 한다.

얼마전 도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김해림은 자신의 기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그들 때문에 행복하다. 기부는 곧 상대와 같이 한다는 즐거움이고 이런 기쁨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같은 낮은 자세 때문에 그녀는 동료 선수들로부터도 가장 선호하는 경기 동반자로 통한다.

박세복 김해림, 이들 두 사람을 떠올리게 되면 지역 봉사단체의 책임자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그 자리를 마치 개인의 처세나 행세를 위한 등받이로 여기며 탐욕스러울 정도로 집착하거나, 혹은 봉사단체장을 아예 생계수단 쯤으로 삼는다는 의혹을 살만한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몇 몇 책임자들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는 등의 모범적 사례를 보임으로써 도민들의 상실감은 덜 하지만 아직도 적합하지 않은 인물들 때문에 뒷말이 많다. 여기엔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지역을 대표하는 봉사단체장 만큼은 함부로 넘보지 말라는 경고(!)가 숨어 있다.

“약점이 많은 사람이 봉사의 탈을 쓰고 행세하게 되면 본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역사회 자체가 얕잡힌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당당하지 못한 이들이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만들어내는 말이 외지인들에겐 여론으로 둔갑해 사실관계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지역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진단하는 이들이 많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