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두 마리와 양 한 마리가 뭘 먹을지 투표로 결정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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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두 마리와 양 한 마리가 뭘 먹을지 투표로 결정한다면…
  • 충청리뷰
  • 승인 2016.03.0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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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칼스턴·커렐 베크만의 민주주의 비판서 <민주주의를 넘어서>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 민주주의를 넘어서 프랭크 칼스턴·커렐 베크만 지음 구미화 옮김 A-북스 펴냄

오는 4월 13일 치러지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본격 선거철로 접어들었다. 각 정당 예비후보자들이 얼굴 알리기에 한창이고, 공천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공천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구국의 결단’으로 탈당과 무소속 출마 소동을 벌이는 건 흔한 일이며, 정당이 이름을 바꾸는가 하면 심지어는 당을 쪼개고 이합집산을 일삼는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오죽하면 창당한 지 4년 된 녹색당이 가장 전통 있는 정당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겠는가. 하여간 유권자들은 후보자를 고르고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함으로써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할 터인데, 책 <민주주의를 넘어서(Beyond Democracy)>는 그 믿음이 착각이라고 단언한다.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 비판서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은 적잖게 들어봤지만 민주주의를? 인간이 상상하고 고안해 낸 최고의 정치제도라고 알려진, 하나의 종교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정치신념을 비판하다니!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방법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이 책은 ‘문명사회의 적’으로 간주될 위험을 무릅쓰고 지구 최후의 금기에 대한 도전이라 할 만하며, 그 핵심은 민주주의가 진정 인류를 구원하려는 이념을 담았는가 하는 질문에 담겨 있다.

두 사람의 저자는 민주주의가 흔히 내세우는 정당성을 ‘13가지 신화’로 정리해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들의 주장 속에서, 민주주의는 인민이 결정하고 통치하며, 자유와 관용을 의미하며, 번영을 가져오고 평화를 지지한다는 보편적인 믿음은 무참히도 깨져 버린다.

특히 민주주의가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본질적으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한 종류일 뿐이라는 주장은 충격적이다. 민주주의 역시 다수와 국가에 의한 독재라는 주장에 대꾸할 논리가 마땅치 않기에 뼈아프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이 민주주의에 대해 “51%의 사람들이 나머지 49%의 권리를 빼앗는 폭도들의 지배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표현했거니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손꼽히는 사람들이 대개 민주주의에 반대했음을 저자들은 상기시킨다.

민주주의 작동 방식이 가진 문제

늘 그랬듯이, 올해도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앞을 다투어 수많은 약속들을 할 것이다. 공약을 지킬 의지와 가능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당선 후에 못 지키면 그만이고, 지킨다고 하더라도 내 돈이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혹은 의회 민주주의)를 도입한 세계 모든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치인들이 할 줄 아는 건 ①돈을 쏟아 붓고, ②새로운 관련 규정과 규제를 만들고, ③그 규정이 시행되는 걸 감시할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뿐이라고 꼬집는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관료주의와 불경기를 초래하며 불공평과 낭비로 이어지는데,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정부 지출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치솟고 있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당연히 인민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은 높아지고 정부 규제는 확대되며 인민의 자유는 그만큼 줄어드는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지적한다.

그 원인은 정치인한테 있다기보다 민주주의 작동방식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민들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모든 사안을 결정하는 일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그 권한을 정치인들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다. 고작 할 수 있는 건 4년 후에 다른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지만, 그마저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1948년 제헌의회가 첫 헌법을 공포한 순간부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됐다. 3·1 운동으로 건립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헌법을 따르자면 191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 국민들이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 속에 편입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후 4·19 혁명과 6·10 민주화운동 등의 과정에 대중들의 피와 땀을 바치며 오늘날의 사회를 가꾸었다.

그러나 고착화 된 분단의 틀 속에서 성숙한 토론문화를 꽃피우지 못했다. 아마도 민주주의를 비판한다면 ‘종북’으로 몰리기 십상일 테고, 좋은 소리를 들어봐야 ‘그럼 대안이 있느냐’는 호통일지도 모른다. 대안은 어떤 체제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들은 정부 기능의 축소를 꼽는다. 정부의 규제와 과세 없이 안전하고 살 만하며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거버넌스 시장이라는 새로운 정부형태와 분권화를 제안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정부가 작았던 시대에 출발해서 한 세기 반의 시험을 거쳤다. 오늘날 사회를 효율적으로 이끄는 데 한계가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더 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더 창의적이고 이상적인 상상력이라는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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