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오원근 변호사

▲ 오원근 변호사

‘빅브라더’(Big Brother, 大兄)는 조지오웰이 1949년에 쓴 소설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 국가인 오세아니아의 지도자다. 그는 국가권력을 오로지 집권당의 권력유지를 위해서만 사용한다. 당은 텔레스크린을 직장, 도로, 집안 등 곳곳에 설치하여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사상통제를 받은 아들이 아버지를 ‘위반자’로 신고하는 일도 있다.

난 위 소설을 읽을 때 3대 세습을 하면서 주민들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고 있는 북한을 떠올렸다. 비슷한 방법으로 인권을 억압하였던 우리의 과거 독재정권 시대도 떠올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다시는 옛날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린 지금 다시 ‘국가가 국민이 아닌 집권세력을 위해 존재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국회의장은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에 한하여 안건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 있다(국회법 86조).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2월 22일 이병호 국정원장을 만난 다음날 현 상황이 국가비상사태라면서 이철우 의원 등 24명이 발의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켰다. 국가비상사태라면 경계태세를 격상시키는 등 그에 준하는 정부 행동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혹자는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 국정원장에게서 모종의 압력을 받은 ‘정의장 개인의 비상사태’가 아니었냐고 비꼬기도 했다.

테러방지법안은 국가정보원장에게 출입국관리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통신비밀보호법의 절차에 따라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새누리당은 금융정보분석원의 정보가 검찰청, 국세청 등 다른 기관에도 제공되고 있고, 통신제한조치도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검찰청, 국세청 등과 달리 그 조직, 운영 등에 대한 국회의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를 받는 절차도 국가정보원이 일방적으로 작성하고 수집한 것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통제에 한계가 있고, 실제로 그동안 법원이 허가신청을 거부한 비율은 매우 미미하다.

테러방지법안은 국가정보원장에게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도 수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요구할 수 있는 개인정보에는 ‘민감정보’(사상·신념, 노동조합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정보나 위치 요구에는 법원의 영장 같은 제한이 없어서, 앞서 본 금융정보수집이나 도·감청보다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테러방지법안은 인권침해를 막는다며 인권보호관 1명을 두고 있는데,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을 통해 조직과 운영이 정해지는 인권보호관 1명이 국회도 통제하지 못하는 국정원의 인권침해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이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선거에 개입하고, 함부로 남북정상회의록을 공개하였고, 유우성 씨 간첩 사건에서는 증거를 조작하기도 하였다. 이런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에 따라 추가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면, 노동조합원, 야당정치인 등 반정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테러위험인물로 몰아 ‘빅브라더’처럼 그들을 철저하게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인권침해의 우려가 너무나도 크다.

조지오웰이 소설에서 그렸던 ‘빅브라더’의 전체주의 사회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그 통제·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여기서 갑자기 전에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다가 생뚱맞게도 ‘혼외자’ 문제로 검찰총장직을 떠난 채동욱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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