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권혁상 편집국장

“시 감사실은 지난해 9월 시설관리공단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를 통해 A이사장의 업무추진비 부당사용과 회계서류 조작, 업무차량 사적사용 등을 적발했고 이례적으로 감사결과를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이후 ‘자진하차’할 것 같았던 A이사장이 버티자 지난해 10월 전례가 없는 이사장 해임처분이라는 강수를 뒀고 이에 반발한 A이사장이 소송을 제기해 법원은 지난 7월 해임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청주시 관련 기사로 여길 것이다. 지난 18일 청주지법이 강대운 전 청주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의 해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업무차량 사적사용이라는 해임 사유도 그대로 일치한다. 하지만 인용한 기사는 지난해 11월 경기도 안양시 모통신사가 올린 것이다. 시점만 다를 뿐, 속사정이 어찌 그리 똑같은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강 전 이사장은 지난해 1월 청주시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다. 청주시가 제시한 징계사유는 강 이사장이 관용차를 공휴일에 무단 사용하고 4억원대의 청소용역을 부당하게 수의계약했다는 것이다. 민선 5기 청주시 국장 출신으로 임명된 강 전 이사장은 민선 6기들어 공무원 인사적체 해소 등을 이유로 용퇴를 요청받았으나 거부했다. 이후 시설관리공단에 대한 집중감사 칼날이 번뜩였고 이사회는 격론 끝에 징계수위를 ‘해임’으로 결정했다. 이에대해 강 전 이사장은 민선 6기 청주시의 정치적 보복이라며 명예 회복을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결국 재판부는 과잉금지 원칙에 따라 해임은 과도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7개월 만에 안양시와 청주시에서 ‘판박이’ 판결이 내려진 배경은 무엇일까. 결국 전임 단체장이 임명한 사람을 ‘솎아내기’하는 관행이 만연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실제로 A이사장의 해임 결정에 대해 청주시 일부 직원들은 “소송당하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했었다. 또한 30여년 공직에 헌신한 사람을 ‘범법자’처럼 내치는 모습에 혀를 차기도 했다.

이같은 관행은 청주시 뿐만 아니라 충북도,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정가엔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면 3천개의 자리가 뒤바뀐다는 설이 나돈다. 충북도에서도 5년전 충북적십자회장 선거에서 전임이 임명했던 후보가 재선임되자 해당 국과장을 문책인사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누가봐도 낯부끄런 21세기 민주국가의 치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마땅한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온전히 새 단체장의 아량에 기대 전임 임명자를 인정해주는 것이 능사인가.

2년 전 원희룡 제주지사가 새로운 해결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원 지사는 지방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기관장 솎아내기-버티기 악습을 없애기 위해 결단했다. 제주도 산하 공기업 및 출연·출자 기관장의 임기를 도지사와 함께하도록 조정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 1년짜리 기관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전문성에 대한 검증을 위해 산하기관장의 도의회 인사청문회를 도입했다.

물론 도의회에서도 국회 청문회처럼 여야 의원들간에 지루한 정치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도내 단체장들도 화려한 치적보다는 신선한 선례 만들기를 자신의 업적으로 삼았으면 싶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