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산업단지 40년, 제사공장에서 첨단반도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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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산업단지 40년, 제사공장에서 첨단반도체까지
  • 충청리뷰
  • 승인 2016.02.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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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농·청주방적 부설 양백·석천여상 농촌효녀들 눈물 졸업식
한국도자기, 신흥기업 향토기업 명맥…산업부 ‘혁신단지’ 선정
79년 럭키금성부터 LG주력기업 입지, SK반도체 공장증설 추진

강태재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상임고문

▲ 1969년 3월 29일 복대동·송정동 일대를 지방공업개발장려지구로 지정 받아서 9월에 착공을 했다.

청주공단(청주산업단지)은 도시가 훌쩍 커지고 여기저기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그 옛날과 같은 존재감은 희석되었지만 한 시절, 그러니까 ‘청주판 서부개척시대’에는 대단한 존재였다. 공단 월급날이면 시내풍경이 달라질 정도로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 음식점마다 회식손님으로 흥청거렸고, 상점들은 손님맞이에 밥 먹을 시간이 아까웠다고 회고한다. 한마디로 청주의 경기를 좌지우지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청주공단, 오늘날 청주산업단지는 언제 어떻게 조성되었는가. 잠시 돌이켜 보자.

75년 대농 동양최대 면방직 공장

청주는 충북의 도청소재지로서 오랜 옛날부터 지방행정과 교육의 중심이 되는 중소도시로 성장 발전해 왔다. 따라서 산업과는 거리가 먼 소비형도시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본사를 둔 군시郡是주식회사 청주제사공장이 거의 유일한 공장이었고, 광복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

기록에 의하면 1962년에 98개 업체에 2,130인의 종업원이 있었고, 1968년 국제적 호경기를 맞아 167개 기업에 4,763인의 종업원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 해 석유파동으로 타격을 입어 1969년에는 200개 기업으로 업체수는 증가하였음에도 종업원은 3,831인으로 줄었다. 이후 1974년에는 207개 기업체에 종업원이 5,895인으로 크게 늘었는데, 이는 청주에 대기업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무렵 정확히 1969년 3월 29일 복대동·송정동 일대를 지방공업개발장려지구로 지정을 받아서 9월에 착공을 했다. 1977년까지 두 번에 걸쳐 1단지 766,000㎡를 준공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대농 청주공장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역 유지 기업인들이 청주상공회의소를 거점으로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였다. 1966년부터 매년 기회 있을 때마다 정부에 건의하여 산업단지 조성을 촉구하고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였던 것이다.

대농 유치와 관련해서는 재미나는 일화가 있다. 1967년 당시 직물조합 이사장으로서 상공회의소 상임의원이던 박연수 씨가 대규모 면방직공장이 건설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에 상공회의소 김종호 회장(한국도자기)을 비롯한 경제계 인사들이 국회 상공분과 위원장이던 청주출신 정태성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계의 지원을 받아 다각적으로 유치운동을 벌였다.

특히, 청주시 북부지역에 3만평의 부지를 확보해 놓고는, 대구지역에서 공장 후보지를 물색하고 상경하는 관계관을 청주로 이끌다시피 초치하여 공장 부지를 보여주는 등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복대동 555번지 일대 부지 127,354평, 연건평 68,466평에 방적기 48만추, 직기 3,300대의 매머드 방직공장이 건설되었다. 1970년 착공하여 1975년 준공된 동양최대 면방직 공장은 이렇게 청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 섬유회사인 대농은 안정적인 노동인력의 확보를 위하여 1977~1978년에 산업체부설학교인 양백여자중학교와 양백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공단개발, 돈벼락 맞은 농부의 비극

이 무렵의 일이다. 청주변두리 한적했던 복대동, 송정동 일대에 개발붐이 일어나면서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아 갑부가 태어나는 일들이 벌어졌다. 전설처럼 전해오던 이야기 한토막. 짐대마루(복대마을)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데릴사위가 된 한 농부는 자신의 농토가 공단부지가 되자 엄청난 보상금을 받았다. 시내 각 은행마다 보상금을 예치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할 때, 한 은행 지점장이 찾아와서 타고 온 승용차로 이 농부를 모셔다가 당시 청주 최고의 요정 풍성에서 극진한 접대를 했다. 난생 처음 듣도 보도 못하던 산해진미에 아리따운 여성들에 둘러싸여 따라주는 술잔에 호사를 누린 농부가 예금을 해 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생전 처음으로 골덴텍스 양복도 맞춰 입고 매월 정기적으로 이자를 받으러 시내에 출두하였는데, 그때마다 발걸음은 요정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자지급일이 아니어도 지점장에게 승용차를 보내 달라 하여 혼자서도 요정을 출입했다고 한다. 고지식할 정도로 근면하고 성실했기에 주인집 눈에 들어 데릴사위까지 된 그였지만, 처음 한 차례 주색잡기에 혼이 나간 듯 인생행로가 틀어지고 말았다. 재산을 탕진한 것은 물론 건강을 유지하지 못한 그 농부는 오래가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고 전한다.

짐대마루 벼락부자가 모두 다 거덜 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웠던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나중에는 선출직 공직에까지 나아간 사람도 있었다.

종업원이 7,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섬유회사인 대농은 안정적인 노동인력의 확보를 위하여 1977~1978년에 산업체부설학교인 양백여자중학교와 양백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였고, 이어 청주방적도 석천여자상업고등학교를 개설하였다.

‘공순이’들의 형설지공 산업체고교

청주와 인근 고을은 물론 전국각지에서 몰려드는 방직공장 여공, 속칭 공순이라 불리는 여성노동자들은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고작이었다. 나이 스물을 훌쩍 넘긴 처녀들이 하루를 3등분하여 일하고 공부하고 잠자는 초인적 노력을 기울이며 못다 한 학업에 매진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형설지공螢雪之功이었다. 졸업장을 받아들고 졸업식 노래를 제창하며 졸업식장은 눈물바다 그것이었다.

근로자 수기를 보면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눈에 선하게 보인다. 한창 젊은 나이에 노동과 학업까지 1인2역을 하다보면 먹고 돌아서면 허기가 들 정도지만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치약의 길이를 짧게 하여 한 번 쓸 걸로 두 번 쓰는 식이었다. 그렇게 억척스레 모은 돈을 고향의 아버지에게 보내 소를 사서 기르게 하고, 논밭을 늘리니 술주정꾼 아버지가 술을 끊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얘기는 기본으로 나오는 이야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여공들의 나이는 낮아지고 학력은 높아져 중학교 정도는 졸업을 하고 공장에 오게 되었다. 그전처럼 눈물바다를 이루는 졸업식 광경은 점차 달라졌지만 섬유산업의 경쟁력 상실과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산업체 부설학교도 막을 내리게 되고 말았다.

초창기 1,2단지 조성과 입주기업

두 번의 조성공사가 마무리 되어 청주공단 제1단지가 완공된 70년대 입주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단오거리에서 들어가는 초입에 청주방적, AMK, 삼화전기, 조광피혁, 일동제약 등 외지에서 들어 온 제법 규모가 큰 회사의 공장도 있었지만 중소기업이 많았다.

또 한국도자기, 한양콜크, 신흥기업, 남한흥산 등 향토기업도 속속 공단에 입주하였다. 이어 1978~79년간에 조성된 2단지 258,000㎡에는 삼립식품, 동아오츠카, 한국도자기, 영태전자 등이 입주하였고, 2단지 한쪽에 청주직업훈련원이 들어서 청주기능대학, 다시 한국폴리텍대학Ⅳ로 발전했고, 그 남쪽으로 잇대어 복대시장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단이 처음 조성될 때만 해도 도로 사정이나 전력공급이 썩 좋지 않았다. 공단을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도랑이 홍수 때면 범람하여 하천주변 공장들은 물에 잠기기가 일쑤였다. 또 공단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악취 때문에 말썽이 일어나곤 하였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까닭은 처음 공단 조성 당시 기업유치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지역차원에서 경험이 없었던 탓도 있다. 민원이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는 기업을 사전에 가려 낼 여유가 없었던 데다가 급격하게 청주의 서부지역이 팽창, 그야말로 서부개척시대가 열리면서 공단이 부심권이 돼버린 것이다. 공단 위치를 서북 편에 잡은 것이 문제였다. 특히 겨울철이면 서북풍을 타고 인근 주거지역으로 멀리는 도심까지 그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 청주산업단지의 발전기동안 1979~1986년에 3단지 1,811,000㎡, 1987~1989년에 4단지 1,237,000㎡, 총 면적 4,099,000㎡로써 20년간에 걸친 조성사업의 대단원을 찍었다.

럭키금성과 LG 진출 3,4단지

최근에 청주산업단지~청주테크노폴리스~오창과학산업단지를 잇는 도로를 ‘엘지로’로 명명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도로를 '엘지로'로 명명한 까닭은 인근에 LG화학 등 LG 계열사가 다수 입지하고 있으며, 또 LG그룹은 충북도와 함께 오창읍에서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영, 중소·벤처기업 발굴과 육성을 지원하고 있는 공을 감안한 것이라고 한다.

LG계열사는 청주산업단지에 LG화학, LG생활건강, LG전자, LG이노텍이 있고, 오창과학산업단지에도 LG화학이 있다. 또 옥산산업단지에는 LG하우시스, 오송생명단지에는 LG생명과학, 오창2산단에도 LG화학이 있는 등 LG가 지역경제발전에 기여한 점도 평가한 것이다. 1969년부터 1979년까지 10년간이 청주공단, 청주산업단지의 초창기였다면, 다음 10년간 즉 1979년부터 1989년까지 2차 10년간은 3,4단지를 조성하는 발전기에 해당된다.

청주산업단지의 발전기는 럭키금성그룹, 오늘날의 LG그룹이 열었다. 부산에서 창업한 LG는 주력기업인 화학과 전자 모두 부산에 공장이 있었다. 이 중 주력 화학과 일부 전자계열을 청주로 이전하기로 하고, 1979년부터 연차적으로 청주산업단지 내에 ㈜럭키, 금성계전㈜, 금성마그네틱㈜, 금성정보통신㈜ 그리고 LG반도체㈜ 공장을 이전 또는 신설함으로써 청주지역 최대 기업군으로 대두되었다.

LG그룹이 주력공장을 청주산업단지로 대거 이전 또는 신설함으로써 종전 대농 청주공장의 독주시대가 막을 내리고, LG그룹 5개사가 생산, 수출 및 내수, 고용 등에서 상위랭킹을 휩쓸면서 청주지역 경제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고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렇게 LG 계열사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주출신 전문경영인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LG그룹은 지리적 이점과 양질의 우수한 노동력 그리고 청주 출신의 전문경영인으로서 LG그룹 창업공신인 박승찬 사장과 윤욱현 사장의 영향으로 청주지역을 주력업종의 생산기지로 택하였다고 생각된다.

LG는 1988년 9월 4단지 3,4블럭에 반도체 공장을 착공하게 된다. 청주산업단지가 도약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반도체 제조공정상 절대적인 공업용수가 태부족하였다. 청주공단에 공급되는 공업용수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관계기관은 물론이고 건설담당 임원과 함께 방송에까지 출연하여 여론에 호소하던 기억이 새롭다.

LG·현대·하이닉스·SK반도체

언론에서는 반도체 공장에 무려 5조원인가 하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돈이 투자된다고 하였다. 그래서였던가, 당시 임성재 충북도지사가 구자경 LG회장과 자리를 했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임 지사가 구 회장에게 청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충청도 출신 도백께서 충청도 인심도 모르시느냐, 이곳 사람들의 심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뭐 그런 내용의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최첨단산업이라고 기대에 부푼 반도체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가난한 농촌 처녀들이 일과 학업을 병행하던 대농시절은 가고, 고졸 대졸의 학력을 가진 남녀가 반도체 공정에 투입되었다. 당연히 임금이 높아졌다. LG그룹이 사세를 기울여 건설한 반도체 공장은 한동안 잘 돌아갔다.

그런데 IMF 사태가 터졌다. 1999년 10월이었던가? IMF사태를 극복하려는 국가차원의 빅딜과정에서 현대전자에 흡수 합병되고 말았다. 빅딜과정에서 지역차원의 대책회의가 열렸고, LG 반도체를 방문했을 때, 울분에 차 어쩔 줄 모르던 사장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빅딜 이후 반도체시장의 급격한 가격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현대반도체는 그룹에서 분리됐고, 하이닉스반도체로 자구노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해고 등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07년 M11 공장 확장을 하였고, 2012년 3월 새로운 주인을 만나 SK하이닉스반도체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주산업단지 완성과 미래

청주산업단지의 발전기동안 1979~1986년에 3단지 1,811,000㎡, 1987~1989년에 4단지 1,237,000㎡, 총 면적 4,099,000㎡로써 20년간에 걸친 조성사업의 대단원을 찍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청주산업단지를 완성한 힘은 오창과학산업단지로 확대됐고, 오송첨단의료보건산업단지로 뻗어갔으며, 이제 다시 돌아와 이웃 송절동에 청주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다. ‘산업부 지정 혁신단지’로 선정돼 향후 10년간 9천억 원을 들여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갈 것이라 한다. 혁신단지 사업은 기반시설 개선, 혁신생태계 조성, 입주기업·근로자 환경을 개선하여 산업과 도시환경이 융화된 도시형 산업단지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핵심은 공간재편(Eco-Square)과 혁신역량(Inno-Square) 강화다. 기존 공해유발 업종을 친환경 첨단산업 업종으로 재편한다. 아파트형 공장이나 비즈니스 업무타운 조성 등 스마트 융·복합 신산업 단지를 조성한다. 공동물류센터 건립, 성장유망업종 집적지 건립, 근로자 및 주변 지역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레저·문화·휴게 공간, 주차타워 등 공공시설 조성을 통해 업종 고도화와 산단 이미지 제고 공간이 마련된다. 업종 고부가가치화 및 연구·혁신역량 강화도 추진된다.

또 청주 혁신지원센터 건립과 산학융합지구 조성, 어린이집·작은 도서관 등 근로자 종합복지관 건립, 근로자 거주 오피스텔 건립, 비즈니스 호텔 건립, 근로자 건강 증진을 위한 스포츠 콤플렉스 건립, 지역특화 전시 및 홍보를 위한 테마형 복합상가 건립 등을 통해 혁신 지원 및 비즈니스 지원기능이 도입된다.

이밖에도 근로자 힐링 테마공원 조성, 근로자 행복 주택 건설, 산업단지 문화 재생사업, 산업역사 테마거리 조성, 폐수 처리장 환경정비 등이 추진된다. 이리 되면, 그동안 도시 팽창으로 산업단지와 주거지역이 혼재돼 있어 도시미관과 대기환경 악화로 시민들이 겪었던 불편은 상당부분 해소될 터. 바야흐로 청주산업단지는 중흥기에 접어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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