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김현이 청주노동인권센터 사무차장

▲ 김현이청주노동인권센터 사무차장

한밤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왔다. 상대방은 “김현이씨죠?”라며 나를 확인하고는 늦게 연락해 미안하다며 말을 시작했다.

나는 청주노동인권센터에서 일을 한다. 주로 어려운 노동자들의 노동문제 상담과 지원활동 등을 하는 단체이다. 하는 일이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보니 오시는 분들께 감사인사도 받고, 주변에서도 고생한다, 좋은 일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3년 전부터 충북지역에 여러 시민사회, 노동, 교육 단체들이 모여서 충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라는 연대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청소년 주체를 모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청소년 노동인권 캠프를 준비하게 되었다. 캠프에 청소년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세계 최저임금으로 점심 먹기, 노동자 인터뷰와 권리찾기 상황극, 노동자와 비노동자 사진 찍기 등 다양한 체험 활동으로 구성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캠프 출발 하루 전날 문제의 전화를 받았다. 캠프를 신청 한 청소년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차분하게 말을 시작하셨다. 가겠다는 자녀를 못 가게 막으면 집에 난리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캠프를 다녀오라고는 했지만 신경이 쓰이신다고 하셨다.

충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알아야겠어서 연락하셨다고 했다. 나는 네트워크의 공신력을 어필하려고 충북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것, 충북대학교법학연구소와 공동주최로 캠프를 진행한다는 것을 설명해 안심시키려 했다.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이미 우리네트워크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셨다.

“여기는 선진국이 아니다, 나중에 커서하면 되지 왜 벌써 애들을 물들이냐, 이게 정말 애들한테 좋은 일인지 생각해보라”며 나를 다그치셨다. 계속되는 어머니와의 말씨름에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어머니도 지쳤는지 나중에는 “제발 우리 애 좀 꾀어내지 말아달라, 캠프 다녀온 다음에 우리 애한테 연락 좀 하지 말아달라.”며 부탁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처음 겪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불쾌하면서도 어머니의 절실함에 무기력했다. 다행히 캠프는 즐겁고 유쾌하게 끝났다. 그 청소년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온 만큼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캠프 때 진정한 노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인정받고, 사회를 발전시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모두 그런 노동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도 ‘노동’을 위험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노동인권 캠프’에 가겠다는 자녀를 잘 다녀오라고 배웅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청소년들과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청소년 노동인권 보장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청소년들과 만나기로 했다. 그 어머니한테는 캠프 끝나고 자녀한테 연락하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나도 그때는 치사해서 부르기도 싫고, 다시 불편한 상황을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갈등 속에서도 피하지 않고 부딪치며 나왔던 그 청소년처럼 나도 도망치지 말고 그 청소년을 제일 먼저 불러야겠다. 그래야 우리가 바라는 세상도 가까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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