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개인적으로 설 명절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사람도 명절 앞에 목욕재개 하듯이 정치권도 묵은 때를 벗기는 시점이 바로 명절이기 때문이다. 일가친척 다 모여 세상 돌아가는 얘기로 밤을 새는 명절, 그 입방아가 두려운 것이 정치의 속성이다.

1년을 끌어온 충북도와 도교육청의 장기 미제사건(?)이 해결됐다. 무상급식 예산을 놓고 장군멍군식 공방을 벌이다 설 문턱에서 합의문을 발표했다. 겉으론 도교육청이 충북도의 주장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방의 합의란 있을 수 없다는 상식에 비춰 양 기관장간에 모종의 약속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면합의든 신사협정이든, 얽힌 갈등을 수습한 자체로 의미는 크다. 특히 도단위 수급기관장 간에 신뢰 회복의 단초를 마련한 것은 천만 다행이다.

대다수 도민들의 눈높이로 다행스런 일이 또 하나 있었다. 1일 노영민 의원이 4월 총선 불출마를 발표했다. 청주 최초 4선 의원 도전을 포기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차점자를 여유있게 따돌렸던 3선 의원이 ‘국민의 눈높이’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말 언론에 집중보도된 ‘시집 강매’ 논란으로 이미 당원자격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상태였다. 사실상 출판기념회를 통한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모금은 누구 하나 예외가 없는 일이다. 특히 끗발없는(?) 야당 국회의원에겐 유일한 모금 창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의원실에 출판사 신용카드 단말기를 갖다놓고 피감기관의 책구매를 결제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갑질 논란’에 휩쓸렸다. 더민주당의 중진 상임위원장이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국회 대표 갑질의원으로 난도질 당했다.

노 의원은 대학 민주화 운동을 가장 치열하게 겪은 대표적인 386 정치인이다. 연세대 재학중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95년 민주개혁 국민연합 충북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고향 청주에서 재야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2000년 16대 총선 첫 도전에 고배를 마셨고 17대~19대까지 3선에 성공했다. 재야 출신의 치밀한 분석력과 시를 가까이 하는 감성을 겸비한 정치인으로 여의도에서 단단한 입지를 다져왔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아 영향력을 키웠지만 당직을 사양하는 미덕을 보이기도 했다. 노 의원이 발간한 2권의 시집 속에 자신이 겪었던 수감-노동운동-재야-국회 활동의 빛과 그림자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도내 현역 의원 가운데 최연소 3선 의원의 도중하차는 지역 인재풀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더민주당 윤리심판원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고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여의도 국회의 관행이라 할 지라도 외부로 드러난 이상 징계는 불가피했다. 당내 비상대책위 체제에서 가중처벌까지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움추렸다 뛰는 개구리가 더 멀리 간다’는 말처럼 노 의원은 재충전의 기회를 얻게 됐다. 새로운 정치 2막을 꽃피우기 위해 전화위복의 지혜를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

“희망만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절망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희망이 용기의 샘이라면 절망도 용기의 샘입니다” 노 의원의 자작시 ‘생사일여(生死一如)’의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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