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상태바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 충청리뷰
  • 승인 2016.02.03 16:4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임사>발행인 한덕현
▲ 발행인 한덕현

위악(僞惡)과 위선(僞善)이 있습니다. 앞말은 악하지도 않은데 악한 척하고 뒤엣말은 선하지도 않은데 선한 체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위악은 주로 약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위장술인 반면, 위선은 강자들이 자신들의 실체를 숨기는데 악용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힘없는 벌레나 동물들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특이한 문양이나 색깔을 만들어 위기를 벗어나려 합니다. 상대를 겁박하기 위해 일부러 악한 척하는 것입니다. 아직 철없는 청소년들이 몸에 문신을 새기는 의도 또한 자신을 험악하게 보이도록 해 상대를 주눅들게 하는데 있습니다.

통상 거리투쟁에 나서는 약자들은 예외없이 붉은 깃발이나 붉은 머리띠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려고 애를 씁니다. 강자에 맞선 약자들이 기댈 것은 억지로라도 악한 척하는 위악의 행위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약자들이 위악을 자처하면서까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현실에선, 결코 선하지도 않으면서 선한 척하는 강자들의 ‘위선’이 약자들을 끊임없이 박탈하고 억누르는데도 이것이 제도적 혹은 법적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얼마전 타계한 고 신영복 선생이 자신으로부터 20년 20일의 청춘을 앗아간 교도소를 감옥이 아닌 대학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위악과 위선의 관계를 감옥만큼 실체적 경험으로 깨닫게 하는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위악으로 상징되는 잡범(개털)은 물론이고 위선의 화신인 고등범죄자(범털)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람들과 살을 맞대고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학문으로서도 쉽게 접하지 못할 깨우침을 얻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끝내 좌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위선에 대한 저항이 우리사회의 구태를 개혁하는 동력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체제의 효과적인 작동에 봉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위선을 자행하는 세력도 또 이를 견제하려는 세력도 모두가 위장된 ‘가짜’라는 사실에 그는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던 ‘교도소 인문학’조차 끝내 허망할 수 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가슴아파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권력도 가짜이고 정치도 가짜이고 모든 게 가짜들로 넘치는 지금의 세태입니다. 언론 역시 강자들의 위선을 파헤치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들과 기득권을 나누고 즐기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올해 창간 23주년을 맞는 충청리뷰가 끊임없이 천착해 온 것은 다름아닌 이러한 강자들의 위선에 맞서는 깨어있는 어깃장입니다. 위선에 대해 남들이 쉽게 생각하고 같잖게 치부하려 할 때 리뷰는 그 위선의 베일을 벗기려 부단히 애를 써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9년만에 돌아 온 리뷰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설을 무색케 합니다. 구성원들의 변함없는 열정, 독자들의 흔들림없는 지지와 연대감, 그리고 이것을 중심으로 하는 바른 언론을 향한 가치의 공유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100세 시대의 국가적 화두는 온통 ‘다시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노후대책을 준비하고 후반기 인생을 고민하며 새로운 삶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는 의기가 도처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여, 충청리뷰도 이제 새로운 시작을 감행하려 합니다. 숱한 역경과 시행착오를 극복했다고 해서 결코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 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몇해전 국내에도 소개돼 화제가 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들’(제임스 다운톤 주니어)의 한 구절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부터 고쳐잡겠다는 의지의 발로입니다. 이것이 아니고선 앞으로도 그저 지금까지 하던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리뷰는 반성부터 하겠습니다. 독립언론의 명분에 갇혀 기계적 신념에 너무 집착하지는 않았는지, 지나친 완벽주의에 매몰린 나머지 정작 보편적 가치추구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을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비판언론의 숨쉴공간 즉 언론자유를 위한 사회적 포용에 너무 안주하며 오만하지는 않았는지를 통렬하게 자성할 것입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생전 신영복 선생이 마지막 강의에서 별리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남긴 말입니다. 다시 시작하겠다는 리뷰의 약속 또한 강물처럼 흘러 오늘의 만남이 반드시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정직한 사회, 깨끗한 나라, 살만한 세상, 사람냄새 나는 공동체라는 그 꽃 말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곽근만 2016-02-12 17:34:35 , IP:115.2*****
선배님 항상 존경하고 있습니다. 충청리뷰 더욱 번창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