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펴냄.

책 읽는 재미를 즐기며 사는 사람이라면,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먼 바다에서 오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감동과 여운으로 한참 행복했던 기억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원제: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은 내게 그런 특별한 만남을 경험하게 해준 책 가운데 하나였다. “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나만의 비밀 장소’ 중)― 할머니의 말씀처럼 이 ‘좋은 것’을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작은 선물을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책방에 들러 챙겨가곤 했다.

<내 영혼이…>는 아빠와 엄마를 잇달아 잃은 다섯 살 소년 ‘작은나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와 함께 생활하며 체로키족의 지혜와 가치관을 체득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조금은 거칠고 글자도 모르는 할아버지와 섬세하고 사려 깊은 할머니의 가르침은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하다. 우리 어른들 말로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로 배우는 게 아니라 보는 대로 배운다’는 금언을 들은바 있거니와, 이래라 저래라 일체의 군말 없이 모든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삶 속에서 영혼으로 느끼고 배우는 풍경은 참으로 흐뭇한 것이다.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들을 저장해두지. 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자연의 이치’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다.”(‘사랑해 보니 비’ 중) “늑대별 알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이면 꼭 그 별을 쳐다보도록 해라. 할아버지와 나도 그 별을 볼 테니까. 잊어버리지 마라.”(‘산을 내려가다’ 중)― 산에서 먹을 것을 얻는 사람으로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고마움, 부족의 역사, 낱말과 문장, 어리지만 생활인으로서 일과 역할, 죽음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 심지어 할머니 몰래 할아버지에게 듣고 배운 욕지거리까지 생활철학을 ‘전수’받으며 작은나무는 성장해 간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산업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교육풍토에 지친 독자라면, 독특하다 싶을 만큼 익살스럽고 재치 있는 화법에 웃음 짓다가 가슴 저린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히며 책을 덮고 난 후 영혼이 따뜻해진다는 게 이런 것인가 하는 느낌으로 놀라게 될 것이다.

뜨거운 논란 불러 일으킨 소설

그러나 이런 감동은, 저자 포리스트 카터가 백인우월주의 테러단체인 KKK(Ku Klux Klan)단의 리더 그룹에서 활동했던 아사 카터(Asa Carter)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 앞에서 길을 잃는다. 그것은 도도하게 달려온 파도가 바위를 만나 산산이 부서져 곤두박질치는 모양을 지켜보는 것과 같은 상실감이다. 1976년 <뉴욕 타임즈>의 보도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논란에 휩싸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데다 제1회 에비賞(ABBY, 전미 서점상연합회가 서점 판매 중 가장 보람을 느낀 책에 수여하는 상)을 수상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큼 화제를 불러온 책이었으니 독자들의 ‘뜨거운 혼란’은 당연한 반응일 터이다.

<내 영혼이…>는 저자의 자전소설로 알려져 있고, 격렬한 분리주의자로 활동할 때에도 작가는 외가 쪽으로 체로키족의 혈통을 물려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극단적인 인종차별을 주장하는 연설문과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가 한 사람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작가와 작품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대체로 ‘작품은 작가정신의 산물’이므로 분리하기 어렵다고 보는 의견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더구나 독자 대중의 열광은 때로 맹목적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더 이상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궁극적으로 백인 지상주의자의 위선이다, 등등 배신감을 토로하는 비난들이 쏟아졌다.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 무덤 위에 ‘천국’을 건설한 미국인들이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포리스트가 아사였다면 나는 그런 비난들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 비난의 높이는 곧 감동의 크기를 반증하는 것뿐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내 영혼이…>는 그만큼 매혹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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