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학급 반장, 부반장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 지난 3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여자 부반장에 뽑혔다며 한 자랑을 했다. 난생처음 선거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 기쁨에 충만해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딸아이에게 ‘그럼, 너는 누구 찍었니?’라고 물었다. 질문의 의도는 반반의 가능성을 놓고 그 결과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를 찍었다고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순간, 조숙하지 못한(?) 딸아이가 얼마나 예쁘게 돋보이던지….

 지난달 30일 충북도교육위원회 후반기 의장단 선거가 있었다. 7명의 교육위원들이 교황선출 방식이라는 수준높은(?) 선출방법을 통해 의장과 부의장을 뽑았다. 역시 교육선출직 공직자답게 만장일치로 후반기 지도부를 구성했다. 전반기에도 만장일치로 의장, 부의장을 선출해 교육위원의 고매한 인품을 과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쉽게도 4명의 위원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나머지 3명은 투표 직전 총총히 도교육위 청사를 빠져나갔다. 사실상 선거를 보이콧(거부)하는 의사표현이었다.

 교황선출 방식은 선거권자인 추기경 전원이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장시간의 토론을 통해 추기경 중에 한 사람을 교황으로 선출한다. 일부라도 선거보이콧이 있다면 이것은 교황선출제가 아니다. 더구나 상당수의 보이콧이 있었다면 이것은 민주적 선거의 본질을 훼손한 것이다. 선거당일 투표를 거부한 3명도 문제지만 나머지 4명의 교육위원들끼리 의장, 부의장을 선출한 ‘강심장’은 놀라울 뿐이다.

 당초의 선거판세로 볼때 결선투표까지 가더라도 3+1, 즉 4표이상 득표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캐스팅보드를 쥔 +1에 당락이 걸린 셈이고, 도교육위의 3+3 구도에 속하지 않는 단기필마 진옥경 위원이 캐스팅보드의 주인공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교육위원들은 당일 오전 8시30분, 진위원에게 연락조차 하지않은채 6명이 미리 모여 합의추대를 논의했다. (진위원의 캐스팅보드 가능성을 우려한 사전모임으로 풀이된다)

 예상대로 도교육위 ‘3총사’로 꼽히는 고규강, 김남훈, 성영용 위원은 고위원을 의장후보로 추천했고 여기에 이상일 전 의장이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등출신의 이 전 의장이 초등출신 위원의 손을 들어준 셈이고, 송대헌 이기수 위원은 투표거부를 통해 원초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특히 3선의 이기수 위원은 전반기 의장선거에서 같은 3선인 이 전 의장에게 양보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정신적 충격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선거의 압권은 부의장직을 둘러싼 ‘3총사’의 내분이었다. 이 전 의장은 어차피 부의장직에 나설 형편이 아니었고 고규강 위원은 후반기 의장에 선출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김남훈 성영용 위원이 합의를 보지못해 2시간의 마라톤 협상을 벌인 셈이다.(그때, 2시간의 대화(리얼토크) 녹음테이프가 있다면 공전의 히트를 칠 수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고규강 의장, 김남훈 부의장의 쌍두마차가 묶여졌지만 진로는 험난할 것이다. 일단 3바퀴가 빠진 상태에서 어떻게 평형감각을 유지할지 지켜볼 일이다. 특히 두 위원은 초등출신으로, 집행부 수장인 김천호 교육감이 초등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날카로운 감시와 견제기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또한 두 위원은 학부모 교육단체 출신인 진옥경 위원과 대립각이 깊어 화해와 평화를 이루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에서 다른 친구를 찍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초등 4학년 딸아이, 충북도 교육위원의 싹수는 이미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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