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 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영동군이 수도권 소재 대학에 다니는 군민 자녀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예산을 들여 공공기숙사를 확보했다. 서울시가 지은 공공기숙사의 2개실을 임차해 남녀 각 2명씩 4명의 학생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한달 12만원의 저렴한 이용료는 반갑지만 30년 임차료로 1실당 1억원씩 예산을 투입했다. 도내 지자체가 임차형 기숙사를 서울학사로 제공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충북도가 1992년 개원한 충북학사(350여명)와 제천시가 2005년 개원한 제천학사(100여명)는 지자체가 직접 건축해 운영하고 있다. 빠듯한 기초자치단체 예산으로 수십억원을 특별사업에 쏟아붓기는 어렵다. 더구나 지역 사회의 폭넓은 동의를 얻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영동군은 임차형식으로 2개 방을 확보해 어물쩡하게 ‘영동학사’를 마련했다. 충북학사가 시군 인구비율에 따라 입학생을 받고 있지만 추가로 군비를 들여 4명분을 늘인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 세금이라 한다면 도비, 군비 이중으로 투입하고 있는 셈이다.

지방 유학생에게 서울 주거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양질의 공간까지 제공한다면 일거양득이다. 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휘는 학부모들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공공예산이 투입되는 학사시설은 양립하기 힘든 두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지역 우수인재 양성과 지역 서민의 교육비 절감이다. 경제력이 딸리는 서민 자녀들 가운데 우수 학력자가 많으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상식이다.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들의 성적이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사교육 투자가 많을 수록 점수가 높아진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다.

결국 숭고한 교육이념을 내세운 향토학사의 두가지 목표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서민 자녀들에게 벽이 높고 여유층 자녀들은 문턱이 낮아진다. 4년제 대학 이상 입소가 가능한 충북학사는 보통의 성적으론 원서도 못내민다.

우선 고교 내신성적 3등급 이상 또는 대입수능 성적 백분위 점수 80점 이상이라야만 접수가 가능하다. 도단위 통합선발 기준을 보면 이들을 대상으로 성적 75점, 생활정도 25점, 가산점 5점의 평가기준으로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성적 배점 비율이 3배나 높다보니 생활형편은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결국 지자체 지원없이도 서울유학이 가능한 여유층 자녀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국가고시 1차 합격자와 특수 영재를 대상으로 7% 정도를 뽑는다.

물론 기회균등선발(12% 내외) 명목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소년소녀가장, 실업자 자녀, 부모 또는 본인 장애자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단지 12%를 사회적 지원이 절실한 소외계층 몫으로 배정한 셈이다.

인재양성과 교육 소외계층 지원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적어도 50%는 보장해야 맞는 것 아닌가? 12%라는 애매한 비율로 ‘생색내기’하고 정작 지향하는 목적은 성적우수자의 입신양명이다. 그 입신출세가 자신의 고향으로 피드백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전제한 것이다. 21세기에도 혈연 지연 학연이 활개치는 한국 사회의 후진적 모습이기도 하다. 도내 지자체의 선진적(?) 학사 관리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