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때 나치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던 기간은 정확히 4년 2개월이었습니다. 1944년 8월 25일 연합군의 승리로 독일로부터 해방된 프랑스가 첫 번째로 착수한 일은 친독분자를 색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나치에 부역한 10만 명이 검거됐습니다. 이들은 독일군에 붙어 동족을 괴롭힌 자 들이었고 그 중에는 문필가 언론인등 지식인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검거된 자들 가운데 6700여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3만 7천여명이 투옥됐으며 죄질이 가벼운 4만 여명이 공민권을 박탈당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금지됐습니다.

 독일군에게 몸을 준 여자들은 거리에서 강제로 머리를 깎이고 옷을 찢긴 채 ‘독일 놈에게 몸을 팔았다’는 표지를 가슴에 달고 끌려 다녔습니다. 모든 부역자들은 철저하게 책임을 추궁 당했고 응징을 감수해야했습니다. 프랑스의 자존심을 건 거국적인 ‘민족 대청소’는 그처럼 질풍노도와 같았습니다.

 그 같은 일은 프랑스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벨기에는 5만명, 네델란드는 4만명, 노르웨이는 2만명을 나치 협력자로 가려내 사회로부터 추방했습니다. 드골이 앞장 서 외친 ‘위대한 프랑스’는 그렇게 출발했다고 역사는 증언하고있습니다.

 그럼 우리 나라는 어떠했을까? 장장 35년, 프랑스의 열 배 가까운 기나긴 세월 속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이 나라는 과연 몇 사람의 친일파를 색출해냈고 또 단죄했는가? 일제의 주구(走狗)가 되어 나라를 팔아먹고 동족의 피를 빨던 매국노들은 그 얼마이고 제 민족을 괴롭히던 ‘인간짐승’들은 또 얼마였나?

 작고 언론인 송건호선생의 ‘한국현대사’에 의하면 1948년 정부수립직후 국회의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한 기간은 기껏 8개월. 당초 조사대상 7천명 중 영장발부는 682건에 불과했는데 그나마 실형선고 7인, 집행유예 5인, 공민권정지18인등 30인만이 법의 제재를 받았고 실형을 받은 7인도 1년여만에 모두 풀려났습니다.

 친일파 청산이라는 민족적 과업은 그렇게 용두사미가 되었습니다. 정권에 눈 먼 이승만 일파의 의도적 방해 때문임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해방 뒤 일제관리 7만 명이 독립된 정부에 충원됐고 특히 경찰간부의 70%는 친일경력자였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독립지사를 잡아다 고문하던 일제순사가 이번에는 해방된 새 나라의 경찰로 둔갑해 친일분자를 조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진풍경을 연출했습니다.

 정부수립초기 고급공무원 가운데 55.2%가 조선총독부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이때부터 친일파청산의 단추는 잘못 끼워졌고 민족정기의 회복은 물 건너갔던 것입니다.

 얼마나 지지리 못난 민족이었으면 더러운 과거사를 덮어두고 60년 세월을 헛되이 해왔을까. 친일파의 자식들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독립지사의 후손들은 못 배우고 헐벗고 굶주리는 이 나라가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필칭 역사가 5천년이라면서,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라면서, 올림픽 금메달순위가 9위라면서 왜 과거청산은 그리도 어렵습니까. 진실을 밝히는데 시효는 없습니다.

 늦었지만 이제 나마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진상을 밝히고 그리고 나서 용서할건 용서하고 화해하는 국민적 결행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실종된 민족정기를 되찾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요체임을 나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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