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 읽기

귀촉도(歸蜀途)
서 정 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銀粧刀)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역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歸蜀途)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 시집 ‘귀촉도’ (1948)

<허장무 글·이은정 그림>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그대를 앞에 두고도 차마 그대라고 부르지 못하는 마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미리 취하는 마음, 그리고 그대에게 간절히 닿으려는 설렘에서 사랑은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천지간에 고운 옷을 입고 그대와 나의 가슴을 관통하며 세월을 넘어 흐릅니다. 그리고는 교묘하게도 사랑은 그토록 애 터지는 이별을 통해서 그 불멸성을 획득하게 되지요. 사랑과 이별이 있어 너와 나,  멀리 떠난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 산 자와 죽은 자, 저승과 이승, 차안과 피안의 거리에서 서로 마음을 나누고 영혼을 불사르는 것입니다.

이 시는 설화를 현실에 접목시켜 사별한 임에 대한 정한의 슬픔을 처절하게 노래한, 미당의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시로, 해방 직후 발간한 같은 제목의 두 번째 시집 <귀촉도>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시는 세연으로 구성되어 있고, 첫 연에서는 임과의 사별의 정황을 노래하지요. 서역이나 파촉 삼만 리는 불교적 상상력에서 나온,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멀고 먼 이별의 정서적 거리를 표현한 것이고요. 떠나는 임을 향한 눈물의 헌화 행위를 진달래라는 설화적 소재를 통해 슬픔의 극한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연에서는 임을 향한 정절과 다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의 정을 표현합니다. 정절의 표상인 은장도가 나오고, 이제는 부질없어져버린, 젊은 여인의 상징이기도한, 생명처럼 소중한 머리털을 베어서 신이라도 삼아드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육날 미투리는 여섯 날로 꼰 질이 좋고 아름다운 조선의 신발입니다. 셋째 연으로 가면 보통 두견새, 소쩍새 또는 자규라고도 불리는 귀촉도를 통하여 시공을 초월한 임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나타냅니다. ‘귀촉도’는 우리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애절한 정한을 표현하는 소재인데, 이 시에서도 촉나라 망제혼의 화신이라는 귀촉도의 울음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로, 저승으로 떠난 임을 상징하는 동시에 임과 나를 연결하는 사랑의 매개체 구실을 하고 있지요.

‘죽음은 존재의 단절이 아니라, 다만 유한한 존재의 형식에서 하나의 다른 존재형식으로 이행하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빌헬른 폰 홈볼트의 말 그대로, 이 시는 역설적이게도 사랑이 죽음을 통하여 비로소 그 불멸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잡고 있던 사랑의 정을 못내 내려놓지 못하고, 그의 모습이 사라진 자리에서 차마 눈길을 거두지 못할 때, 억장이 무너지는 깊은  한의 자리에서 태어난 시이지요.

우리는 사랑에서 이별을 읽고 이별을 전제로 사랑을 통찰하기 시작합니다. 영원한 사랑이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면 삶과 죽음의 거리는 저 멀리서 밤하늘에 굽이굽이 흐르는 푸른 은핫물처럼 진정한 사랑의 비의를 지니고 눈물 아롱아롱 아름다워집니다.
이승에서의 애절한 사랑이 시를 잉태하고 저승을 향한 사별의 정한이 시를 빚어 완성했습니다.
사랑이여 이별이여 죽음이여 그대 하늘 끝에서 더 이상 울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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