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제로 충청일보 사태, 빛바랜 58년 역사
노조 전격 제작거부 돌입, 도민들 사태 직시 절실

  충북 지방언론의 좌장격인 충청일보가 또 풍랑에 휩싸였다. 지난 29일부터 노동조합의 연가투쟁과 제작거부로 신문발행 자체가 파행되고 있다. 사측은 비노조원과 간부 사원들을 신문제작에 긴급 투입했지만 평소 20면 발행이 30일 8면, 31일 이후 12면 발행으로 축소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노조는 경영책임자인 조충전무이사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까지 불사할 뜻을 밝히며 배수진을 치고 있고 사측은 노조의 단체행동에 법적 대응까지 고려중이어서 해결의 실마리가 쉽지 않을 조짐이다. 통상 말하기를 한수(漢水) 이남 최초의 일간지이자 58년 역사를 자랑하는 충청일보가 도민들의 기대를 외면한 채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이를 집중 취재했다. /편집자 주

   
  충청일보 노조(이하 노조)가 29일부터 집단 연가투쟁을 벌인 결정적 이유는 회사측의 인사다. 사측이 경리과에 근무하는 박모조합원(여)을 전산실로 인사조치하려고 하자 노조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단체협상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충청일보 노사는 지난 5월 7일 노조(위원장 문종극·45)가 전격 출범한 후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을 벌였고, 그 타결 내용중에 ‘(사측은) 조합원 인사시 조합과 사전협의한다’는 조항이 있다. 사측이 이를 어겨 궁극적으로 노동법상의 성실교섭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노조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사측의 견해는 다르다. 사장 대행체제로 실제 경영을 책임지는 조충전무(64)는 “인사를 단행한 것도 아니고 단지 검토중이었다.
 
 회사 경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5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마침 전산실 직원 한명이 퇴사해 결원이 생겼다. 전산업무의 중요성을 감안, 인원을 재배치하려 한 것 뿐이다. 해당 경리직원은 최근 광고 입금관리 문제로 논란을 빚었고, 때문에 경리업무에 적합지 않다고 판단했다. 경영합리화를 위한 효율성을 고려했는데 이를 문제삼으면 곤란하다. 또한 아직 단체협상안은 조인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약속은 결국 립서비스에 불과

 노조의 전격적인 제작거부는 사실 그동안 사측에 대한 누적된 불신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지난 5월 7일 노조설립 이후 노사는 나름대로 대화를 터 왔지만 이를 무색하게 하는 일들이 사측에 의해 저질러졌다. 간부로 노조에 가입했던 김영일 편집부장을 6월 1일 돌연 괴산주재기자로 발령냈는가 하면 7월 30일엔 사업부 직원이던 이모씨를 지역 주재기자로 임명하는 등 노조를 자극했다. 특히 김부장의 경우 불과 한달여전에 사회부장에서 편집부장으로 소위 좌천성 인사조치를 당한 상황에서 또 보복인사가 가해졌기 때문에 노조의 심기는 극도로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노조에 따르면 김부장 인사와 관련해 조전무는 6월 4일 충남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 전직원 단합대회를 통해 “앞으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를 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모씨 인사에 대해서도 “미안하다. 앞으로 이런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고 사과성 발언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리직원 박모씨에 대한 인사모색은 노조를 결정적으로 자극한 꼴이 됐다.

 사측은 노조설립 이전에도 모지역 지사장의 주재기자 발령과 사진부 해체 후 취재부서 편입 발언 등으로 직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조충전무는 3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그동안 몇차례 노조와 상의없이 인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영정상화를 위한 고육책이었지 다른 의도는 없다. 앞으로는 직원 인사시 부서장의 추천과 간부들이 주축이 되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말해 노조가 주장하는 부당인사에 대해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젠 거짓말에 안 속아”

 그러나 노조는 조충전무를 아예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며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벼른다. 한 노조 간부는 “조전무의 궁극적 목적은 노조를 깨려는 것이다. 앞에선 그럴듯하게 말하면서도 결국 뒷통수를 때린다. 여기저기 쿡쿡 찔러 보고는 아니면 말고 식이다. 외곽부터 부수려는 노조 파괴의 전형적인 행태다. 이미 주재기자들에 대한 길들이기가 시작됐다. 툭하면 시말서에 경위서를 요구하고 난데없이 재교육까지 언급하고 있다. 노조의 피로와 자중지란을 획책하는 것이다. 부당 인사는 실수나 과오가 아니라 이런 목적하에 고도의 계산으로 이루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강경으로 맞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충청일보의 이번 사태는 사측이 먼저 촉발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월 19일 취임한 조충전무이사는 5월 6일 사원총회에서 한가지 특단(?)의 발언을 한다. “나는 임회장(임광수)의 지시를 받고 올 연말까지 회사를 정리하기 위해 내려 왔다. 그러나 지금 잘 되고 있어 임회장과 없던 일로 했다.” 조전무의 이 말은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58년 역사의 신문사에서 일한다는 긍지 하나로 버티던 직원들을 경악케 했고, 결국 직원들은 단 하룻만에 노조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주인 임광수회장의 견고한 인맥관리로 노조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당시에 대해 문종극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갑자기 둔기로 머리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회사측의 이런 취급에 위기감에 앞서 원초적인 모멸 좌절감을 느꼈고 이젠 행동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노조가 만들어졌고, 지금 투쟁대열에 모두 가담하고 있다.”

시민들의 사태직시가 해결 도움

 현재 노사간 분위기는 험악하다. 마치 일전을 앞둔 전운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노조의 강경투쟁 방침에도 사측의 반응은 냉랭하다. 사측은 노조와의 대화보다는 주변 여론의 무마에 나섰다. 이는 노조에 쉽게 타협이나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여겨진다. 사측은 이미 두 번씩이나 노조를 와해시킨 노하우(?)를 갖고 있다. 배수진을 친 노조 역시 극단까지 각오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위원장은 이미 “언론인으로서 그동안의 과오를 속죄한다는 신념으로 투쟁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지금으로선 양측간의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노조의 제작거부에 맞서 회사측은 일단 12면 발행이라도 안정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장기전도 불사하겠다는 속내로 비쳐진다.

 이번 사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가운데 지역의 한 인사는 전혀 색다른 해석을 내려 관심을 촉발시킨다. 그는 임광수 체제에서 “충청일보의 노사간 갈등은 이미 십년 넘게 계속됐다. 이번 기회에 차라리 서로 뿌리를 뽑았으면 한다. 적당히 봉합하지 말고 누가 옳은지 반드시 결론을 내라는 것이다. 그게 지역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면서 일반 독자들도 이번 사태를 정확하게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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