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관 충북·청주경실련 정책국장

▲ 이병관 충북·청주경실련 정책국장

작년 초까진 정부나 자치단체에 사업을 신청할 때 ‘일자리 창출’이란 말을 계획서에 넣어야 일이 수월했다고 한다. 올해는 트렌드가 조금 바뀌어 ‘청년’이란 말을 넣는 게 좋아 보인다. 둘을 합해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고 하면 금상첨화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정 연설에서 청년을 32번 언급했고, 2016년도 예산안 발표의 제1순위가 청년희망 예산이었다.

2015년 정부가 청년 일자리를 위해 들인 예산은 본예산과 추경을 합해 1조 9천억 원에 달했는데, 올해는 2조 1천억 원을 편성했다. 청년 전체 예산도 아니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서만 2조 원 이상 쓰는 셈이다. 그만큼 정부도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식하여 올해 관련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할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에서 그 많은 일자리 창출 사업을 하였지만 도대체 누구의 일자리가 개선되었던가? 청년 일자리가 좋아졌나, 노인 일자리가 좋아졌나? 아니면 여성 일자리가 좋아졌던가? 개선은커녕 박근혜정부는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향으로 개악을 하고 있다.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청년실업은 현 정부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사회나 경제가 청년실업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흘러왔을 뿐이다. 굳이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부모세대의 ‘집단적 경험’을 아무런 비판 없이 자녀세대에 물려줬기 때문이다. ‘내가 너 나이 때에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바로 그 잔소리와 사고방식이다.

부모세대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거쳐 개발연대에 청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대학을 나오면 구직이 되었고 신분상승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공부할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아 당시엔 20대의 0.8%만이 대학을 다녔다.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로, ‘학력 = 신앙’이란 공식이 머릿속에 박히게 된다.

그런 시절을 보낸 부모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서 상황이 역전된다. 자녀의 숫자는 줄어들고 경제력은 향상되어, 자신이 못 받은 교육을 자녀에게 집중해서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자녀세대는 80%가 대학생이 되었다. 반면 산업구조는 바뀌어 대학을 나온 자녀세대가 취업할 일자리는 점점 줄고 있다.

젊은 세대를 이해 못하는 고리타분한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비꼬아 부르곤 하는데, 청년들이 권력을 쟁취하지 않는 한 당분간은 이런 꼰대들이 청년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것이다. 20대의 0.8%가 대학생이이던 시절의 경험과 사고방식으로 20대의 80%가 대학생인 시절의 청년문제를 해결하려 드니 꼬인 매들이 풀릴 리 없다. 설령 청년들이 권력을 쟁취한들 그들 역시 부모세대가 만든 ‘학력 = 신앙’이란 프레임에 갖혀 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

꼰대가 꼰대인 이유는 꼭 나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무비판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하기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경험이 왜 다른 곳에선 통용되지 않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꼰대들이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그런 기대를 갖고 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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