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 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충북의 유일한 위안부 생존자인 이옥선 할머니(90)가 건강이 악화돼 보은읍내 병실에서 새해를 맞았다. 한일 양국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에 대한 소감을 묻기 위해 3일 <뉴시스> 기자가 병실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의 대답은 안타깝고 허탈했다. “일본하고 합의됐다고? 난 먼 내용인 지 모르는데…”

할머니는 20여년 전 한 방송국의 위안부 프로그램을 보고 스스로 커밍아웃해 국내외에서 일제만행을 증언해 온 피해자다. 결국 우리 정부의 합의 발표가 있은 지 닷새가 지나도록 할머니에겐 아무 기별도 닿지 않은 셈이다.

충북 출신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급부상 중인 반기문 UN사무총장의 한일 위안부 문제 타결에 대한 언급이 입방아에 올랐다.

반 총장은 1일 박 대통령과 신년인사 통화에서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충북 유일의 피해자는 내용조차 통보받지 못했는데 반 총장은 ‘올바른 용단’이라고 추켜세웠다.

반 총장은 개인이기에 앞서 유엔사무총장이라는 국제기구의 장이기 때문에 발언의 적절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전쟁범죄로 비난받고 있는 위안부 문제의 핵심과 이를 해결하고자 쏟아온 노력을 도외시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었던 인명진 목사는 언론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수용해야 한다, 피해자에 대한 정의 회복과 배상을 해야 한다, 책임자를 기소해야 한다, 이게 유엔 인권기구들이 일본 정부에 계속해서 권고했던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유엔의 수장인 사무총장이 이 세 가지 조건에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 협상을 잘됐다, 위대한 결정이라고 하는 건 망발”이라고 꼬집었다.

반 총장은 국내 언론사의 대선 후보군 여론조사에서 1년전부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호남지역에서도 야권의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을 따돌릴 정도다. 박 대통령은 은연중에 반기문 띄우기에 나섰고 친박계 의원들이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 총장이 위안부 협상을 박 대통령의 ‘용단’으로 평가한 것은 친박계의 코드와 일치한다. 특히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지면서 청와대가 직접 해명해야 할 위기(?)의 순간에 반 총장이 박 대통령에게 지원사격을 해준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반 총장은 이제 국내 정치 한 가운데로 들어와 있다. 야권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대못’을 박으면서까지 박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선은 아직 2년이 남았다. 유권자도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고 반 총장도 냉정한 현실인식이 요구된다.

국내 정치에서 그는 한번도 제대로 검증 받지 않았다. 그의 관료로서 평가는 ‘대세추종형’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부장관 시절 국회 답변에서도 늘 ‘존경하는 ○○○ 의원님이 하문하신 내용에 답변드리겠습니다”로 조아렸다.

영호남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대세추종은 충청권 관료의 현명한 처신일 수 있다. 하지만 만인지상의 대권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대세주도형으로 변신이 필수적이다. 정치인은 외교를 할 수 있지만 외교관이 정치를 하기는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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