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12월 24일은 618번째 4월 16일이다. 그리고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김재영 학생의 생일이다.

얼마 전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청문회가 3차에 걸쳐 열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여당 추천 위원들은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증인으로 출석한 해경 관계자들도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한마디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2월 14일부터 3일에 걸쳐 열린 세월호 청문회는 지상파 방송 3사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종합편성채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언론을 제대로 된 언론이라 할 수 있을까? 정부와 여당이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정부는 특조위를 무력하게 만들어 결국 해체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지난 달 어느 언론에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공개되었다. 이 문건에는 청와대를 조사하지 못하도록 특조위 내부에서 여당 추천 위원들이 사퇴까지 불사한다는 기자회견을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고, 실제로 11월 19일 이들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내년도 특조위 예산은 61억 7천만 원으로 확정됐다. 세월호 특조위가 신청한 198억 7천만 원의 3분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내년 6월까지의 직원들 인건비를 제외하면 10억 원 정도를 갖고 모든 사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조사 업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1년 8개월이 지났다. 책임 소재는커녕 진상 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선거에서 심판받을 줄 알았다가 기사회생한 정부와 여당은, 이제 세월호를 ‘사고’로 규정하여 철저하게 사고-보상의 프레임으로 몰아간다. 세월호는 분명히 ‘사건’이다. 우리는 살인‘사건’이라고 하지 살인‘사고’라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언론에서 세월호를 사고로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세월호=교통사고’의 등식을 사람들의 무의식에 주입하려는 의도된 노력의 산물이다. 누가 뭐라 지껄여도,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참사 사건을 하루빨리 덮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행동은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정말 궁금하다. 왜 선장은 아이들에게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는지. 왜 해경은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국가는 이토록 무기력했고 뭘 자꾸 감추려는지. 왜. 왜. 왜.

세월호 청문회가 열리는 시간에, 청문회가 열리는 건물 맞은편에서 ‘어버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단체 등이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었다. “대통령이 참사를 일으켰냐?” “세금 도둑” 이라며 특조위 해체를 요구했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연민의 감정조차 메말라버렸나.

그러다가 연민의 감정에 대한 비판한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적절한 반응은 연민이 아니라 수치심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를 무기력하게 방치한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 수치심으로 얼굴 붉히고 몸서리치며, 늦었지만 진실을 규명하여 책임 있는 자를 철저하게 응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역사가 2014년 4월 16일을 더 나쁘게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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