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가 되면서 요즘 거리거리의 음식점들은 ‘망년회특수’가 한창입니다. 저무는 한해를 아쉬워하며 가까운 지인들 끼리 정담을 나누고 회포를 푸는 모습들은 우리사회가 갖고있는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망년(忘年)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한해를 잊는다는 뜻이지만 본디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망년지교(忘年之交)니 망년지우(忘年之友)라 하여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과 나이 차에 상관없이 사귀는 것을 일컬어온 것이었습니다.
망년회는 원래 우리나라에 있었던 풍습은 아닙니다. 바다 건너 일본사람들은 해마다 한해가 저물면 나이를 잊는다는 의미로 모임을 갖는 전통이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하나의 문화로 정착이 된 듯 합니다.
농경사회이던 지난 시절 우리조상들은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온 가족이 모여 한해를 돌아보며 밤을 지새우던 수세(守歲)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섣달 그믐날밤에는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가가호호에서는 집 안팎 구석구석에 등잔불을 밝혀놓고 남녀노소가 함께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자지 않고 지난 일을 얘기하며 밤을 새웠는데 이를 수세라 하였다’고 적고있습니다.
소동파의 동파기(東波記) 촉속편(蜀俗篇)에 ‘대 그믐날 주연(酒宴)을 준비하고 친구를 초대하여 연음(宴飮)을 베푸는데 이를 별세(別歲)라 하며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밤을 밝혀 이를 수세라 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우리조상들의 수세 역시 오래 전 중국에서 전해온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수세는 새해를 맞으며 근신(勤愼)의 뜻 과함께 악귀를 쫓고 길복(吉福)을 기다리는 경건한 기원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하루해가 지면 그 날 하루를 돌아보듯 한해를 보내면서 그 해에 있었던 온갖 일을 새겨보고 정리하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긴 하겠습니다. 세상살이라는 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닌 고로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을 잊고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합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망년회가 차분한 대화와 성찰의 자리가 되기보다 술 취해 떠들고 흥청대며 노래부르고 춤추는 것으로 변질이 돼 있다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잖아도 경제가 어렵네, 나라가 어지럽네 하고 걱정들을 하는 분위기 속에서 온 사회가 온통 ‘먹자 판’ 이 되고 ‘놀자 판’이 된다면 그것은 정녕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사회도 이제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이 정도 살만큼 됐다면 거기에 걸 맞는 시민적 금도(襟度)와 문화가 있어야 할 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선진국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각설(却說). 날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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