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하자마자 요구···도의원 각각 1년 3억원에 곱잖은 시선
작년 12월 폐지···"그 불만 폭발로 올 ‘예산 칼질’ 파동" 뒷말

제10대 충북도의회는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의원 재량사업비 문제가 불거졌다. 이번 예산삭감도 지난해 폐지됐던 재량사업비에 대한 불만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공식적으로는 전시·선심성, 일회성 예산이라서 깎았다는 것이고 재량사업비 얘기는 전혀 꺼내지 않으나 이를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재량사업비는 공식명칭이 아니다. 공식명칭은 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이다. 의원들에게 1인당 얼마씩 나눠주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재량권을 주었기 때문에 재량사업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 충북도의회 새누리당은 이시종 지사 역점사업과 진보적인 시민단체 예산을 대폭 삭감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졌다. 내년 총선을 겨냥했다는 '설'과 재량사업비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기자회견중인 새누리당 의원들. 사진/육성준 기자

도의회는 상임위에서 총 4조247억원 규모의 내년도 도청 예산안 중 무려 387억1799만원을 삭감했다. 주요 예산은 세계무예마스터십대회 개최 16억원, 충북개발공사 출자금 150억원, 영동∼단양 종단열차 운행 손실보상금 16억원, 오송 전시관 건립 타당성조사 2억원 등이다. 또 이시종 지사 시책추진비인 특별조정교부금 100억원, 중국인 유학생 페스티벌 2억원 등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추가 삭감됐다.

특히 이 지사 역점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업의 예산이 뭉턱뭉턱 잘려나가자 집행부에서 재량사업비를 폐지한 것에 대해 보복한 것 아니냐는 게 도청 안팎의 얘기다. 특히 도의회 새누리당이 사안마다 다리를 걸자 이 지사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광역지자체가 이 예산을 벌써 폐지했고 충북도도 지난해 12월 폐지했기 때문에 이를 부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충북도의원들은 재량사업비로 2011년 1인당 4억원, 2012년 이후 연 3억원, 청주시의원들은 1인당 연 1억원의 예산을 받았다. 그러나 누가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사용한 뒤 사후평가도 이뤄지지 않아 시민사회단체로부터 폐지 압력을 받아왔다.

 

충북도, 2014년 12월 재량사업비 폐지
 

충북도는 지난해 처음 이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재량사업비 사용처가 시·군 고유사무에 집중되고 1년에 100억원이 훨씬 넘는 예산이 부담된다는 이유였다. 도내에서는 도의회에 앞서 청주시가 폐지하면서 변화의 물꼬를 텄다.
 

다만 청주시는 완전 폐지한 건 아니고 소규모 주민숙원을 해결해주는 예산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의원 1인당 얼마씩 나눠주는 게 아니고 각 사업부서에서 필요한 사업을 올리고 이것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면 되는 것이다. 다시 편법이 등장할 요소가 없는 건 아니어서 이 또한 지켜봐야 한다. 때문에 주민숙원사업비 조차도 폐지해야 말썽의 소지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는 여론이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새누리당 예산삭감에 반발해 한 때 예결위원장석을 점거했다. 예산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아 더 지켜봐야 안다. 사진/육성준 기자

확인해보니 도의원들은 도로포장, 정자설치, 경로당 물품구입, 학교기자재 구입 등에 가장 많은 예산을 사용했다. 역대 일부 청주시의원들은 경로당에 비데·안마기·씽크대까지 사줬고, 경로당에서는 대놓고 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를 선거에 이용하는 의원들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의원 쌈짓돈이라는 얘기가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현 도의회는 출범한 뒤 바로 재량사업비 문제를 들고 나왔다. 지난해 7월 전 의원들인 제9대 의회가 돈을 대부분 쓰고 나갔다며 집행부에 예산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핫이슈로 떠올랐다. 재량사업비는 매년 지급되는데 지난해는 6월에 지방선거가 있었고, 7월에 제10대 의회가 시작됐다. 집행부는 이 돈을 연초에 지급했으나 선거가 6월에 있자 9대 의원들이 상반기에 몰아서 쓴 것.
 

의원들은 1인당 1억5000~2억원을 제2회 추경에 편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집행부는 고민 끝에 1인당 9000만원씩 지급했다. 집행부는 지난해 상반기에 이미 105억원의 재량사업비를 지원한데다 다른데 쓸 재원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했으나 새누리당이 압도적으로 당선되자 모른척하지 못하고 결국 요구를 들어주고 말았다.
 

제9대 의회가 1년치 예산을 상반기에 몰아서 마음대로 썼다는 것은 이 돈이 의원 쌈짓돈 이라는 것을 입증시켜준 것이다. 집행부는 이 돈을 주더라도 선거를 감안해 6개월치인 절반만 집행했어야 하나 한꺼번에 다 줘 그 만큼 예산이 낭비되고 말았다. 1인당 9000만원씩 의원 31명에게 지급된 돈 27억9000만원은 아낄 수 있었던 돈이다. 이 때문에 재선의원은 지난해 3억9000만원의 재량사업비를 썼다.

 

폐지된 예산 부활하면 ‘거꾸로 행정’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양 손에 의정비 인상과 재량사업비 존치라는 두 개의 떡을 든 도의회가 두 개 모두 거머쥐기 위해 꼼수를 부려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도의회는 11월 6일 현 의정비 4968만원보다 8.7% 인상된 5400만원을 요구하며 재량사업비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의견서를 충북도 의정비심의위원회에 전달했다.

그러자 충북참여연대는 “대표적인 선심성 예산인 재량사업비를 투명하게 사용하겠다는 것은 집행부에 이 예산을 편성하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재량사업비는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게 답”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이후 도의회는 재량사업비를 폐지하는 대신 이 지사 시책추진보전금에서 재량사업비를 보전해주면 폐지하겠다는 ‘편법’을 제시해 또 한 번 비판을 받았다. 시책추진보전금은 지사가 시·군이 추진하는 사업 중 재원이 부족한 곳에 주는 예산이다. 이 지사는 이를 거절했다.
 

올 4월 새누리당은 인사특위를 열겠다고 이 지사를 압박했다. 이 지사가 본회의장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인사를 했으나 의원들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 면밀히 검토해 개선, 보완해 나가겠다”고 답변하자 인사특위는 없었던 일이 됐다.
 

하지만 뒤로는 제1회 추경에 도의원 재량사업비와 성격이 유사한 소규모 사업 예산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로당 등 노인여가시설 기능 보강 6억2850만원, 소규모 공공시설 개선 사업 7억200만원, 노후 불량 공동주택 단지 내 시설 보수 3억5400만원 등이다. 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는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모 도의원은 “군지역 의원들은 재량사업비가 없으면 의정활동 하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한다. 군민들이 소소한 사업 부탁을 자주 해서 안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문제많은 재량사업비를 받지 않겠다고 나서지 않은 이유도 의원들간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일부는 받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량사업비는 투명하지 않은 예산집행으로 항상 문제가 돼온 만큼 폐지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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