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기자는 신역이 고되게 두툼한 서류철에 며칠째 파묻혀 있었다. 청주지방법원을 드나들며 퇴출금융기관 파산재단들이 청산절차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조그마한 퇴출금융기관의 파산재단 관련 서류라도 수백쪽을 넘었고, 이를 일별하는데에만 엄청난 시간이 소모됐다. 하지만 취재수첩에 정보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며 기자적 본능에 파르르 긴장의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짙고 긴 퇴출의 그림자’ 제하의 기획기사(2000년 11월20일자)는 이렇듯 기자의 무식한(?) 단순노동과 법원의 취재협조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기에는 또 법원 고위관계자와의 토론에 가까운 인식공유의 ‘만남’이 결정적 도움이 됐다. 그 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문제의식이 적확했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 파산재단 관재인을 꼭 변호사로 선임할 이유가 있는가. 변호사가 법률관계에 해박하다 해도 파산업무에는 예금보험공사 등 관련기관 직원이 더 정통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제천지역 모 금융기관의 파산관재인에 예보직원을 선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 망한 금융기관의 파산재단 직원 연봉이 5000만원이나 되는 것은 통념상 너무 많지 않은가. 이 돈은 결국 채권자에게 돌아가야 할 돈(배당돼야 할 몫)인데.
“미처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해당 파산재단 관재인이 요청하길래 직원에 대한 보너스 및 임금수준을 그렇게 결정토록 허락했는데 (기자의 지적처럼)과다한 것 같다.”
- 청주지역 3-4개 금융기관 파산재단이 채권자에 배당한 실적들이 천차만별이다. 법원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맞는 얘기다. 관재인들을 소집, 청산업무가 빨리 이뤄지도록 채근하겠다.”
그러나 기자는 전폭적으로 취재협조를 해 준, 나아가 짧은 만남이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을 공유하며 믿음을 나눈 그 고위관계자를 끝내 ‘배신’해야 했다. 문제의 기사를 통해 파산재단에 대한 법원의 감시소홀까지 비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노력을 들인 만큼 뜨거운 반응은 얻지 못했다. 세상은 이런 일-주변에 만연해 새로울 것도 없는 도덕해이 현상-을 벌써 알고 있었다는 듯 시큰둥해 했다. 둔감함이 낳은 무반응이었을 것이다.
이 때문일까 1년여의 세월이 지나 2001년도 거의 저문 요즘 우리사회가 보이는 제자리 걸음의 ‘역사정체’에 기자는 분노 충격과 같은 도식적인 표현의 감정에 앞서 무기력과 허탈함, 나아가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서울지역 6개회사 파산관재인으로 임명된 변호사들이 회사소유의 회원권으로 시도때도 없이 골프를 치고, 망둥이가 뛰니까 뭐도 뛴다고 파산재단 직원들까지 그 대열에 끼어 근무시간에 그린으로 달려가 ‘굿샷’을 외치며 공적자금을 공짜로 써댔다니...기자의 이런 고백이 지나친 패배주의적 토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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