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들의 고향, 아테네에서 열린 제 28회 올림픽에서 한국의 남녀 신궁들이 귀신같은 활솜씨를 보이며 세계를 제패했다. 4개의 메달 중 3개를 따냈으니 한국을 일컬어 '신궁의 나라'라고 부를만 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나 율리시즈도 시샘을 할 솜씨였고 아들의 머리 위에 얹은 사과를 맞췄다는 윌리암 텔마저 기가 죽을 만한 쾌거였다.

1만7천년전 후기구석기 유적인 단양 수양개에서는 약 2백여점의 흑요석이 발견되었다. 흑요석이란 화산 폭발시 생성되는 단단한 암질의 돌로 화살촉, 창 등 예리한 사냥도구를 만드는데 사용한 선사인의 보물이었다.

선사인들은 이동시 흑요석을 재산목록 제 1호로 챙겼다. 이 돌이 있어야 여러 사냥도구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요석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었고 효과적 사냥을 위한 까만 마법의 돌이었다.

예로부터 배달겨레의 활 솜씨는 중국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이(東夷)라 했는데 동이(東夷)의 이(夷)는 큰 대(大)자 밑에 활 궁(弓)자를 쓴 회의(會意)문자다. 즉 동이는 동쪽에 사는 활 잘 쏘는 민족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부여(夫餘)사람들은 용감하고 날래며 집집마다 갑옷과 무기가 있고 활, 화살, 창, 칼 등을 갖추었다고 위지동이전은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에는 맥궁(貊弓), 예(濊)에는 단궁(檀弓) 등이 있었는데 모두 강궁(强弓)이었다. 오(吳)나라의 손권에게 고구려의 사신이 각궁(角弓)을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각궁은 물소 뿔로 만든 고구려의 강궁이다.

부여에서는 활 잘 쏘는 명궁을 일컬어 주몽(朱蒙)이라 했다.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왕(東明王)은 어릴 때 벌써 '주몽'의 칭호를 받았다.
고구려는 봄 가을에 바자울을 치고 사냥을 했는데 왕이 친히 나갔다.

고구려의 장천, 쌍영총 벽화를 보면 맹수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장면이 등장한다. 호랑이를 쫓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맹수 중 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동면을 하고 있다. 곰 숭배(토테미즘)사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병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한 곳에 모여 활쏘기를 배웠다. 과녁의 한가운데인 곡(鵠)을 맞추면 상으로 은 주발을 주었다. 오늘날 '정곡(正鵠)을 찌른다'는 말은 바로 과녁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주 중앙공원에 있는 충청병마절도사영문의 본래 이름은 정곡루(正鵠樓)다.

조선시대, 활쏘기는 무과(武科)의 필수과목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널리 즐기는 대중 스포츠였다. 세조 때는 무사의 궁력이 130근 짜리 활을 당기는 자라야 응시할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중에는 활을 만들고 시위를 당기는 장면이 등장하며 활터인 북일영(北一營)도 묘사했다.

활터는 전국적으로 산재하였는데 그중 경희궁의 황학정(黃鶴亭)이 가장 유명하다. 충북에는 진천의 행은정(杏隱亭), 괴산의 중심정, 증평의 상덕정 등이 일제 때에도 존재했었다 한다.(충북국궁사)

과녁의 한가운데를 명중하면 이를 관중(貫中)이라 했다. 오늘날 양궁으로 치면 10점에 해당하는 점수다.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한 궁사 중 옥천출신 박경모와 충북체고 재학중인 임동현이 관중을 거듭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김수녕에 이은 충북의 신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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